격외선(格外禪)
- 언어 · 문자로 의론할 수 있는 격식을 초월한 선법. 조사선(祖師禪)에서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이심전심(以心傳心) 교외별전(敎外別傳)으로 깨우치는 것을 전하는 선을 말한다.
'눈썹 털을 애끼지 않고~'
- 석취미모(惜取眉毛). 경(經)의 뜻을 잘못 해석하면 미모(眉毛, 눈썹)가 빠진다는 뜻으로 요설(饒舌)을 경계한 말.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벗어나 해탈하였다는 말. 생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 열반의 경지에 드는 것.
생사(生死)
- ① 생과 사.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
- ② 유전(流轉 윤회의 생존. 생사의 갈림길)의 모습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 미혹(迷惑 도리에 어두운 것). 미혹의 세계. 미혹의 모습. 현실 사회의 고뇌. 태어남과 죽음이 번갈아 끊임이 없는 미혹의 세계. 윤회와 같음.
[참고 ①] 송담스님(No.389)—19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난 것이고, 그 번뇌가 꺼질 때 또 죽는 것,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것이 바로 생사(生死)인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이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거 그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업(業)만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참고 ②]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상권. 동진(東晉) 평양(平陽) 사문(沙門) 석법현(釋法顯) 한역(漢譯). (동국역경원 | 최민자 번역)
爾時 世尊卽說偈言 我欲棄捐此 朽故之老身 今已捨於壽 住命留三月 所應化度者 皆悉已畢竟 是故我不久 當入般涅槃 我所說諸法 則是汝等師 頂戴加守護 修習勿廢忘 汝等勤精進 如我在無異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을 말씀하셨다. 나는 쇠약하고 늙은 이 몸을 이제 버리려 하네. 지금 이미 목숨을 버렸어야 함에도 수명을 늘려 석 달을 머물려 하네. 교화(敎化)하고 제도해야 할 일을 모두 다 이미 마쳤네. 그러므로 나는 머지않아 반열반에 들 것이네.
내가 말한 모든 법이 곧 그대들의 스승이니 공경하여 받들고[頂戴] 더욱 지키고 보호하여 닦아 익혀 잊지 말고, 그대들은 부지런히 정진(精進)하여 내가 있을 때와 다름이 없어야 하네.生死甚危脆 身命悉無常 常求於解脫 勿造放逸行 正念淸淨觀 善護持禁戒 定意端思惟 攝情於外境 若能如此者 是則護正法 自到解脫處 利益諸天人
나고 죽음은 매우 위태롭고 몸과 목숨은 모두 무상하니 항상 해탈을 구하여 방일(放逸)한 행동하지 말아야 하네. 바르게 생각하고 청정하게 관하며 금계(禁戒)를 잘 보호하고 지키며, 산란하지 않은 한결같은 마음[定意]으로 바르게 사유하여 바깥 경계로 치달리는 감정을 거두어야 하네.
만약 이와 같이 하면 이것이 곧 정법(正法)을 보호하는 것이니 스스로 해탈처에 이르러 모든 천상 세계와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하리라.
해탈(解脫)
- (산스크리트어) Vimoksa. (팔리어)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
- 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탁마(琢磨 쫄 탁/갈 마)
- ① 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② 옥이나 돌 따위를 쪼고 갊.
- ③ 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것.
- ④ 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것.
‘내가 지금에 앉어서, 깨달도 못허고 앉어서, 내가 깨달랐다고 남의 것 갖다가 자무반전푼(自無半錢分)이면서, 저는 돈 한푼 없으면서 남의 돈만 갖다 세서 주고 제 못 쓸 것 무슨 소용이 있어?’
- ‘종일수타보(終日數他寶) 자무반전푼(自無半錢分). 온종일 남의 보배만 세면서 자기에게는 한 푼도 없다’
[참고]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강설』 (실차난타實叉難陀 한역 | 무비 스님 강설 | 담앤북스) ‘10. 보살문명품(菩薩問明品)‘ p220~230 참고.
爾時 文殊師利菩薩 問法首菩薩言 佛子 如佛所說 若有衆生 受持正法 悉能除斷一切煩惱 何故 復有受持正法 而不斷者 隨貪瞋癡 隨慢 隨覆 隨忿 隨恨 隨嫉 隨慳 隨誑 隨諂 勢力所轉 無有離心 能受持法 何故 復於心行之內 起諸煩惱
그때에 문수사리보살이 법수보살에게 물었습니다.
“불자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만약 어떤 중생이 바른 법을 받아 지니면 다 능히 일체 번뇌를 끊어 제거한다 하셨거늘 무슨 까닭으로 다시 바른 법을 받아 지니고도 끊지 못하는 자가 있습니까?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따르고, 아만을 따르고, 감춤을 따르고, 분심(忿心)을 따르고, 한(恨)을 따르고, 질투를 따르고, 인색함을 따르고, 속임을 따르고, 아첨을 따르는 세력의 구르는 바가 되어 떠나는 마음이 없습니다.
능히 바른 법을 받아 지닐진댄 무슨 까닭으로 다시 마음의 움직임 안에서 모든 번뇌를 일으킵니까?”時 法首菩薩 以頌答曰 佛子善諦聽 所問如實義 非但以多聞 能入如來法
그때에 법수보살이 게송으로 답하였습니다. 불자여, 잘 들으소서. 물은 것이 사실과 같으니 다만 많이 듣는 것으로는 능히 여래의 법에 들어가지 못하리라.如人水所漂 懼溺而渴死 於法不修行 多聞亦如是
어떤 사람이 물에 떠내려가면서 빠질까 두려워 목말라 죽듯이, 법에 수행하지 아니하면 많이 듣는 것도 또한 이와 같도다.如人設美饍 自餓而不食 於法不修行 多聞亦如是
어떤 사람이 좋은 음식을 늘어놓고도 스스로 주리면서 먹지 않듯이, 법에 수행하지 아니하면 많이 듣는 것도 또한 이와 같도다.如人善方藥 自疾不能救 於法不修行 多聞亦如是
어떤 사람이 약방문을 잘 알면서 자신의 병은 고치지 못하듯이, 법에 수행하지 아니하면 많이 듣는 것도 또한 이와 같도다.如人數他寶 自無半錢分 於法不修行 多聞亦如是
어떤 사람이 남의 보물만 세면서 자기에게는 한 푼도 없듯이, 법에 수행하지 아니하면 많이 듣는 것도 또한 이와 같도다.如有生王宮 而受餒與寒 於法不修行 多聞亦如是
마치 왕궁에 태어난 사람이 배고프고 추위에 떨듯이, 법에 수행하지 아니하면 많이 듣는 것도 또한 이와 같도다.如聾奏音樂 悅彼不自聞 於法不修行 多聞亦如是
마치 귀머거리가 음악을 연주하되 남은 기쁘게 하나 자신은 못 듣듯이, 법에 수행하지 아니하면 많이 듣는 것도 또한 이와 같도다.如盲繢衆像 示彼不自見 於法不修行 多聞亦如是
마치 눈먼 이가 온갖 형상을 수놓되 남에게는 보이면서 자신은 못 보듯이, 법에 수행하지 아니하면 많이 듣는 것도 또한 이와 같도다.譬如海船師 而於海中死 於法不修行 多聞亦如是
비유하건대 바다의 뱃사공이 바다에서 죽는 것과 같이, 법에 수행하지 아니하면 많이 듣는 것도 또한 이와 같도다.如在四衢道 廣說衆好事 內自無實德 不行亦如是
마치 네거리 길에서 온갖 좋은 일을 널리 말하되 자신에게는 실다운 덕이 없듯이, 행하지 아니하면 또한 이와 같도다.
지견(知見)
- 배워서 얻은 지식과 보고 들어 쌓은 분별력을 아울러 이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