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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累 더럽히다·허물 누)

  • 때꼽재기(때가 여러 겹으로 엉겨붙은 조각이나 부스러기). 허물. ‘때꼽쟁이’는 ‘때꼽재기’의 사투리.

방(棒)

  • 몽둥이. 또는 주장자(柱杖子). ‘방망이 봉’자이지만 불교에서는 덕산방(德山棒) 등의 용례에 따라 ‘방’으로 읽는다.

방할(棒喝)

  • 선가(禪家)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직접 체험의 경지를 나타날 때, 또는 수행자를 점검하며 꾸짖거나 호통칠 때, 방망이나 주장자(柱杖子)를 세우거나 그것으로 수행자를 몽둥이질하는 것을 방(棒)이라 하고, 그러한 때 크게 소리를 내지르는 것을 할(喝)이라 한다.
  • 덕산선감(德山宣鑑)은 방으로 가풍(家風)을 삼았으며, 임제의현(臨濟義玄)은 할로써 지도방법을 삼았다. 이것을 두고 ‘덕산방(德山棒)’, ‘임제할(臨濟喝)’이라 한다.

불석미모(不惜眉毛 아닐 불/아낄 석/눈썹 미/터럭 모)

  • ① ‘눈썹을 아끼지 않는다’는 말. 불법(佛法)을 잘못 이해하여 진리로부터 동떨어진 설법을 하면 미모(眉毛, 눈썹)가 빠진다는 말이 전해온다. 그런데 ‘한 물건(一物)’이라 표현하는 진리의 본체는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다고 하였으니, '눈썹을 아끼지 아니하고 설법을 한다'는 것은 선지식의 중생을 위한 간절한 자비심을 나타내는 뜻이다.
  • ② 말을 아끼지 않는다. 혹은 부끄러움을 무릅쓴다는 말로 결정적인 말을 할 때 겸손하게 이르는 상용구이다.

[참고 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 刊) p11~12. (가로판 p12~14)

有一物於此호대 從本以來로 昭昭靈靈하야 不曾生不曾滅이며 名不得狀不得이로다.

여기에 한 물건이 있는데,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하여, 일찌기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았으며,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음이로다.

(註解) 一物者는 何物고 〇 古人이 頌云, 古佛未生前에 凝然一相圓이라 釋迦도 猶未會어니 迦葉이 豈能傳가 하니 此一物之所以不曾生不曾滅이라 名不得狀不得也라

한 물건이란 무엇인가? 〇 옛 사람이 송하기를 「옛 부처 나기 전에 한 상이 두렷이 밝았도다. 석가도 몰랐거니 가섭이 전할손가」하니 이것이 한 물건의 나는 것도 아니요, 죽는 것도 아니며, 이름 붙일 수도 없고 모양을 그릴 수도 없는 까닭이다.

六祖가 告衆云하사대 吾有一物하니 無名無字라 諸人은 還識否아 하시니 神會禪師가 卽出曰 諸佛之本源이요 神會之佛性이니다 하니 此所以爲六祖之孽子也라

육조스님이 대중에게 이르시되 「나에게 한 물건이 있는데 이름도 없고 자(字)도 없다. 너희들은 알겠는가?」하시니 신회선사가 곧 나와 말하기를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요, 신회의 불성입니다」하니, 이것이 육조의 서자가 된 까닭이다.

懷讓禪師가 自嵩山來어늘 六祖問曰, 什麼物이 伊麼來오 師가 罔措라가 至八年에사 方自肯曰,說似一物이라도 卽不中이니다 하니 此所以爲六祖之嫡子也라

회양선사가 숭산에서 와 뵈니 육조스님이 물으시되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하시니 회양은 어쩔줄을 모르다가 팔 년 만에야 깨치고 나서 말하기를 「설사 한 물건이라 하여도 맞지 않습니다」하였으니 이것이 육조의 적자가 된 소이이다.

三敎聖人이 從此句出이니라 誰是擧者오 惜取眉毛어다
삼교의 성인이 모두 이 글귀를 쫓아 나왔느니라. 뉘라서 말할 텐가, 눈썹을 아낄지어다!

[참고 ②]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247. (가로판 p253) '권말(卷末)에'

<권말(卷末)에>
인간의 두뇌와 손으로 이룩된 물질문명에 의해서 인간 자신들은 물론 온 자연계가 병들어 가고 있고 자칫하면 파멸해 버릴지도 모를 위기에 놓여있다. 이런 시점에서 나와 인류와 자연을 구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자아를 자각함으로써 인간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이러한 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 나갈 때 온 세계는 한 집안이 되고 법계는 적광토가 될 것이다.

선가귀감은 서산대사의 저술로 팔만장경의 골수요 삼세제불과 역대조사의 안목이다. 종파와 종교를 초월해서 참사람 되는 길이 여기에 있다.
금번에 조선조 목판본 8~9종을 참조하여 원문(原文)과 현토(懸吐)를 바로잡았고 번역은 선학원판(1948년)을 본(本)으로 했으되, 지나친 의역(意譯)과 현대어투는 고전답게 교정하였다.

국내외적으로 참선에 대한 관심도가 나날이 높아가고 있는 이때에 참선수행의 올바른 지침서가 간절히 요청되고 있으므로 분(分)을 생각지 않고 감히 선가귀감을 간행하게 되었다。이 책이 자아를 깨닫는데 도움이 된다면 눈썹을 아끼지 않은 보람이라 생각하는 바이다. 불기 2532년 중복에 송담(松潭).

낙처(落處)

  • 안정된 곳. 결국의 장소. 귀착점(歸着點 최종적으로 끝을 맺을 수 있는 결론). 요지(要旨 핵심이 되는 중요한 내용).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1,701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글)를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진공(眞空)

  • ① 아트만(산스크리트어) ātman.)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
  • ② 소승불교에서 설하는 열반을 가리켜 말함. 허위가 아니므로 진(眞)이라 하며, 일체의 상(相 : 특성)을 떠나 있는 까닭에 공(空)이라 함.
  • ③ 유가 아닌 유인 묘유(妙有)에 대하여 공이 아닌 공을 말함. 이것이 대승불교의 궁극적인 가르침임. 진실의 공.

명명백초두(明明百草頭)에 명명조사의(明明祖師意)다

  • ‘백초두(百草頭)가 다 조사의(祖師意)다. 모두 그대로 법(法)이다’

[참고 ①] 『방거사어록(龐居士語錄)』 卷上.

居士一日坐次 問靈照曰 古人道 明明百草頭 明明祖師意 如何會 照曰 老老大大 作這箇語話 士曰 你乍麼生 照曰 明明百草頭 明明祖師意 士乃笑

어느날 거사가 집에서 쉬고 있다가 영조에게 물었다. “고인의 말에 ‘명명백초두(明明百草頭)에 명명조사의(明明祖師意)다’라는 것이 있는데, 그 뜻이 무엇이냐?”
영조 : “나이도 많으신 어른이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방거사 : “너는 어떠하냐?”
영조 : “명명백초두(明明百草頭)에 명명조사의(明明祖師意)입니다” 그러자 거사는 웃었다.

[참고 ②] 전강선사(No.569)—이차돈 선사기(무신68.07.01)에서.(3분 57초)

[명명백초두]

하엽(荷葉)은 단사경(團似鏡)이요 능각첨사추(菱角尖似錐)니라
구구팔십일(九九八十一)이요 팔팔육십사(八八六十四)니라

‘법문(法門), 법문’허니, 법문이 다른 것이 뭣이 있어? 무슨 무엇을 법문이라고 그려?
법문부텀 벌써 뭐 그저 그대로 평상화(平常話)가 법문인디.

하엽(荷葉)은 단사경(團似鏡)이다. 연잎파리, 연잎사귀는 둥그래서 거울같다. 물도 아무리 묻혀봐도 물도 안 묻고 그만 염착이 없어. 그만 흔들어 그대로 물러가 버려. 똑 거울같다 말여. 능각(菱角)은 첨사추(尖似錐)다. 능각이라는 것은 뾰쪽해서 송곳같다.

구구(九九)는 팔십일(八十一)이여. 암만 세봐도 구구(九九)가 틀림없어, 팔십일이지.
팔팔(八八)은 육십사(六十四)여. 팔팔은 별별 구구를 다 붙여봐도 소용없어. 육십사지.

우리 부처님의 법은 이렇게 그만 그대로가 평상화여.
명명백초두(明明百草頭)에 명명조사의(明明祖師意)다. 백초두(百草頭)가 다 조사의(祖師意)다. 백초두에 조사의가 붙어 있는 것이 아니여. 백초! 초두가, 꽃 머리가 다 그게 개시법(皆是法)이다. 거 무슨 법이 따로 붙어 있나? 모두 그게 그대로 법(法)이지.(처음~4분5초)

공안(公案)

  • 화두(話頭)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제팔식(第八識)

  • 팔식(八識) 가운데 여덟 번째인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말함. 뢰야식(賴耶識) = 아뢰야식(阿賴耶識).

[참고] 아뢰야식(阿賴耶識) ; 과거의 인식, 경험, 행위, 학습 등에 의해 형성된 인상(印象)이나 잠재력, 곧 종자(種子)를 저장하고, 육근(六根)의 지각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심층의식.

아뢰야(阿賴耶)는 (산스크리트어) ālaya.의 음사로, 거주지 · 저장 · 집착을 뜻함. 식(識)은 (산스크리트어) vijñāna.의 번역.
아뢰야(阿賴耶)를 진제(眞諦)스님은 a(無)+laya(沒)로 보아 무몰식(無沒識), 현장(玄奘)스님은 ālaya로 보아 장식(藏識)이라 번역.

〇팔식(八識) ; 유식설(唯識說)에서 분류한 8가지 마음 작용.
인간의 모든 마음 활동을 8가지로 분류한 것이 8식(八識)이다.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말나식(末那識)·아뢰야식(阿賴耶識).
8식(八識) 가운데 앞의 5가지 식(識),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을 전5식(前五識)이라 하고, 그리고 第六 意識(제6의식), 第七 末那識(제7말나식), 第八 阿賴耶識(제8아뢰야식)이라 한다.

파설(破說)

  • 설파(說破). 어떤 내용을 분명하게 드러내어 말함.

아 그러면은 “꿀 먹을 때에 어떻게 했으면 살아가겄느냐?” “달다!”

  • ‘달다’는 “등나무 넝쿨에 매달려 꿀방울을 먹던 그 사람이 어떻게 하였으면 살아가겠느냐?”라는 공안에 대한 전강 스님의 답.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20~22.

그러면 여기서 ‘안수정등(岸樹井藤)’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하여 보자.
한 사람이 망망한 광야를 가는데 그 사람을 잡아 먹으려고 무서운 코끼리가 쫓아 따라오고 있다. 생사가 박두하여 정신없이 달아나다가 보니, 언덕 밑에 우물이 있고 등나무 넝쿨이 우물 속으로 축 늘어져 있다. 그 사람은 등나무 넝쿨을 하나 붙들고 우물 속으로 내려갔다.

우물 밑바닥에는 독룡이 입을 벌리고 쳐다보고 있고 또 우물 중턱의 사방을 돌아보니 네 마리의 뱀이 입을 벌리고 있다. 할 수 없이 등나무 넝쿨을 생명줄로 삼고 우물 중간에 매달려 있으니 두 팔은 아파서 빠질려고 하고 흰 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 가며 그 등넝쿨을 쏠고 있다.
만일 등나무 넝쿨을 쥐가 쏠아서 끊어질 때라든지, 또 두 팔의 힘이 빠져서 아래로 떨어질 때는 독룡에게 잡혀 먹히는 수밖에 없다.

그때 머리를 들어서 위를 쳐다보니 등나무에 매달려 있는 벌집에서 달콤한 꿀물이 한 방울, 두 방울, 세 방울, 네 방울, 다섯 방울… 이렇게 떨어져서 입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 사람은 꿀을 받아 먹는 동안에 자기의 위태로운 경계도 모두 잊어버리고 황홀경에 도취되었다.

이것은 비유 설화인데 ‘한 사람’이란 생사고해에서 헤매고 있는 중생을 말한 것이요, ‘망망한 광야’는 생사광야인 육도윤회이고, ‘쫓아오는 코끼리’는 무상살귀(無常殺鬼)요, ‘우물’은 이 세상이고 ‘독룡’은 지옥이다. ‘네 마리 뱀’은 이 몸을 이룬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사대(四大)요, ‘등나무’는 무명수(無明樹)이고, ‘등나무 넝쿨’은 사람의 생명줄이다.
‘흰 쥐와 검은 쥐’는 일월이 교체하는 낮과 밤이요, ‘벌집의 꿀’은 소위 눈앞의 오욕락이란 것이니 재물과 색과 음식과 수면과 명예욕이다.

이것이 바로 생사고해에서 헤매는 중생을 비유하여 말한 설화이다.
이러한 급박한 상황에 놓여 있으면서도 중생들은 그 꿀방울에 애착하여 무상하고 위태로운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올라갈 수도 없고, 머무를 수도 없고, 내려갈 수도 없는 여기에서 어떻게 하면 뛰어나 생사해탈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안수정등’이라는 공안이다.

지금부터 약 45년 전 도봉산 망월사에 용성 스님이 조실로 계시었다. 그때 용성 스님께서는 제방선원에 “등나무 넝쿨에 매달려 꿀방울을 먹던 그 사람이 어떻게 하였으면 살아가겠느냐?”하고 물었다.

만공 스님의 답은 “어젯밤 꿈 속의 일이니라(昨夜夢中事)”
혜봉 스님의 답은 “부처가 다시 부처가 되지 못하느니라(佛不能更作佛)”
혜월 스님의 답은 “알래야 알 수 없고 모를래야 모를 수 없고 잡아 얻음이 분명(拈得分明)하니라”
용성 스님의 자답은 “박꽃이 울타리를 뚫고 나와 삼밭에 누었느니라.(瓢花穿籬出 臥在麻田上)”
보월 스님의 답은 “어느 때 우물에 들었던가(何時入井)”
고봉 스님의 답은 “아야, 아야” 하셨는데,

나, 전강은 답하되 “달다!” 하였으니 언하에 대오할지어다.

안수정등 기능장구(岸樹井藤 豈能長久)

  • ‘언덕 위의 나무와 우물가의 등(藤)나무가 어찌 오래 갈 수 있겠는가’

[참고] 『치문경훈(緇門警訓)』 《위산대원선사경책(潙山大圓禪師警策)》에서.

夫業繫受身 未免形累 稟父母之遺體 假衆緣而共成 雖乃四大扶持 常相違背 無常老病 不與人期 朝存夕亡 刹那異世 譬如春霜曉露 焂忽卽無 岸樹井藤 豈能長久 念念迅速 一刹那間 轉息 卽是來生 何乃晏然空過

대저 업(業)에 얽매여 받은 이 몸은 형상의 근심을 면치 못한다. 부모가 내려주신 유체(遺體, 父精母血)를 받아 여러 인연을 임시로 빌려 함께 이루었다.
비록 다만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가 모여 견디어내나 항상 서로 어기고 등져 무상(無常)하게 늙고 병들어 가는 것이 사람으로 더불어 때를 정하여 약속하지 않아서, 아침에 있다가 저녁에 죽어 찰나에 세상을 달리하게 된다.
비유하면 봄날의 서리, 새벽이슬과 같아 갑자기 없어지니, 언덕 위의 나무와 우물가의 등(藤)나무가 어찌 오래 갈 수 있겠는가. 순간 순간 빠르고 빨라서 일찰나 사이에 숨이 떨어지면 곧 내생이니, 어찌 편안히 헛되게 지내리요.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品)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미륵하생(彌勒下生)

  • 미륵은 (산스크리트어) Maitreya. 번역하여 자씨(慈氏)이다.
  •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