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②]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학자(學者)
학인(學人).
① 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수도(修道)의 성자.
우리의 육근(六根), 육식(六識)을 통해서 일어나는 모든 경계에 즉(卽)해서 화두를 들고 자꾸 화두를 들어 나가면 마음길은 저절로 거기서 끊어져 들어간다. 마음길 끊어짐으로써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게 되고, 의단이 독로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확철대오(廓徹大悟)가 가까워지는 것이다.
[참고 ①] 『전심법요(傳心法要)』 (황벽 선사)
空却見聞覺知 卽心路絶無入處 但於見聞覺知處認本心 然本心 不屬見聞覺知 亦不離見聞覺知
견문각지(見聞覺知)를 비우면 마음으로 모색할 길이 끊어져 들어갈 곳이 없다. 다만 견문각지하는 곳에서 본심을 알아차릴 일이다. 그러나 본심은 견문각지에 속하지 않고, 또한 견문각지를 여의지도 않는다.
[참고 ②] 송담스님(No.427)—1990년 10월 첫째일요법회 (2분 20초)
[심로절]
정법(正法)을 믿고 참선을 해 나가는 사람에게는 그런 이론적인 연구나 추구보다는 바로 화두 공안에 입각해서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해 가야만 하루 하면 하루, 한 시간 하면 한 시간, 일 분 하면 일 분, 한 번 화두를 듦으로써 마음길이 일 분 동안 끊어진다면 그만큼 깨달음에 나아가는 길이, 마음길이 끊어짐으로써 그것이 바른 수행이고, 마음길이 끊어짐으로써 조사관을 타파해 가지고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할 수가 있다.
왜 그러냐?
생사(生死)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삼세육추(三細六麤)의 생각, 그 생각으로 인해서 온갖 몸[身]으로 입[口]으로 뜻[意]으로 업(業)을 지어 가지고 거기서 생사윤회를 하기 때문에 생사윤회를 끊으려면은 우리 마음으로부터서 일어나는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을 단속을 해야 한다.
단속은 덮어 놓고 그놈을 끊으려고 그러고 억누르려고 할 것이 아니라 어떠한 경계(境界)를 당하든지—눈을 통해서, 귀를 통해서, 우리의 육근(六根)을 통해서, 육식(六識)을 통해서 일어나는 모든 경계에 즉(卽)할 때마다 화두를 들고 자꾸 화두를 들어 나가면 화두를 듦으로써 마음길은 저절로 거기서 끊어져 들어간다 그 말이여.
마음길 끊어짐[心路絶]으로써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게 되고, 의단이 독로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확철대오(廓徹大悟)가 가까워지는 것이다 그 말이여.(27분21초~29분41초)
해상(解相)
짐작하여 생각하는 모습의 뜻.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무명 번뇌(煩惱)에 얽매여 업에 따라 과보를 받아 자재롭지 못하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각각의 중생들이 서로 다른 업으로 말미암아 윤회하기 때문에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사향사과(四向四果)의 성인을 기준으로 보면 도를 깨닫지 못한 이들을 모두 범부라 하고, 대승은 성문 · 연각 · 보살 · 불 등 사성(四聖)을 기준으로 하여 보면 육도에서 생사윤회하는 중생들은 모두 육범(六凡)이라 한다.
상량(商量 헤아릴 상/헤아릴 량)
알음알이. 지해(知解).
알음알이[知解. 解. 會. 解會]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알음알이이다。그러므로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크게 써서 절 문에 붙이는 것이 이 까닭이다.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글)를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공안(公案)
화두(話頭).
① 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
② 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 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 —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參句)와 참의(參意)가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참선(死句參禪)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참선(活句參禪)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