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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은(施恩)

  • ① 시주(施主)에게서 받은 은혜.
  • ② 은혜를 베풂.

시주(施主 베풀 시/주인 주)

  • ① 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 ② 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함.

[참고 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 刊) p142~145. p147. (가로판 p149~151. p154)

〇於戱라 佛子여 一衣一食이 莫非農夫之血이요 織女之苦어늘 道眼이 未明하면 如何消得이리요.
(註解) 傳燈에 一道人이 道眼이 未明故로 身爲木菌하야 以還信施하니라.

아 ! 불자여。그대의 한 벌 옷과 한 그릇 밥이 농부와 직녀의 피와 땀 아닌 것이 없거늘, 도의 눈이 밝지 못하다면 어떻게 소화하리요!
(주해) 전등록에 「옛날 어떤 도 닦는 사람이 도의 눈이 밝지 못한 탓으로 죽어서 나무버섯이 되어 시주의 은혜를 갚았다」고 하니라.

〇故로 曰, 要識披毛戴角底麼아 卽今에 虛受信施者是어늘 有人은 未飢而食하며 未寒而衣하니 是誠何心哉아 都不思目前之樂이 便是身後之苦也라 하시니라.
(註解) 智論에 一道人이 五粒粟으로 受牛身하야 生償筋骨하고 死還皮肉하니 虛受信施가 報應如響이니라.

그러므로 말씀하시되 「털을 쓰고 뿔을 이고 있는 것을 알고자 하느냐? 그것은 지금 신도들이 베푸는 것을 헛되이 받은 자가 이것이어늘, 어떤 사람은 배고프지 않아도 먹고, 춥지 않아도 입으니 이 진실로 먹고, 춥지 않아도 입으니 이 진실로 무슨 마음일까? 눈앞의 쾌락이 바로 후생의 괴로움인 줄을 도무지 생각지 않는구나!」하시니라.
(주해) 「지도론」에 이르기를 「한 수도인이 다섯 낱 좁쌀 때문에 소 몸을 받아, 살아서는 뼈가 휘도록 일해 주고, 죽어서는 가죽과 살로써 빚을 갚았다」하시니 헛되이 시주것 받은 응보가 메아리와 같으니라.

〇故로 曰, 道人은 進食을 如進毒하고 受施를 如受箭이니 幣厚言甘은 道人所畏라 하시니라.
(註解) 進食을 如進毒者는 畏喪其道眼也요 受施를 如受箭者는 畏失其道果也니라.

그러므로 이르시되 「도를 닦는 사람은 음식 먹기를 독약을 먹는 것같이 하고, 시주를 받을 때에는 화살을 받는 것과 같이 할지니, 두터운 대접과 달콤한 말은 도를 닦는 사람의 두려워할 바라」하시니라.
(주해) 음식 먹기를 독약을 먹듯 하라는 말은 도의 눈을 잃을까 두려워해서이고, 시주 받기를 화살을 받듯 하라는 말은 도의 열매를 잃을까 두려워함이니라.

[참고 ②]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권상(卷上) 백운화상초록(白雲和尙抄錄 | 원조각성 번역·해설 | 현음사) p111~112. 『전등록(傳燈錄) 1』 ‘제15조 가나제바迦那提婆’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110 참고.

迦那提波尊者得法 後至毗羅國 彼有長者 名梵摩淨德 一日園中 樹生大耳如菌 味甚美 唯長者與第二子羅睺羅多 取而食之 取已隨長 盡而復生 自餘他人 皆不能見

가나제바 존자께서 용수 대사에게 법을 얻으시고 그 뒤에 비라국에 가시었다. 그곳에 장자가 있으니 이름은 범마정덕이었다. 어느 날 정원 가운데 나무에 큰 귀가 생기되 버섯과 같고 맛은 매우 좋았다. 오직 장자와 그의 두 번째 아들 라후라다가 따다 먹었는데 따고 나면 다시 자라고, 없어진 다음에도 다시 또 생겼다.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보지 못했다.

時尊者知其宿因 遂至其家 長者問其故 尊者曰 汝家昔曾供養一比丘 然其比丘道眼未明 虛沾信施故 報爲木菌 唯汝與子精誠供養 得以享之 餘卽否矣 又問 長者年多少 答曰七十有九 乃說偈曰 入道不通理 復身還信施 汝年八十一 其樹不生耳

이 때 가나제바 존자께서 그 전생의 인연을 아시고 드디어 그 집에 가셨다. 장자가 그 까닭을 물으니 가나제바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은 전생에 한 비구를 공양했다. 그러나 그 비구는 도안(道眼)이 밝지를 못해서 헛되이 신심으로 시주한 것을 받았기 때문에 그 과보로 나무의 버섯이 되었다. 오직 너와 너의 둘째 아들만이 정성껏 그 비구에게 공양을 올렸기 때문에 누릴 수 있을 뿐 다른 사람들은 그러하지 못한 것이다”

또 물으시되 “장자의 나이가 얼마냐?” 장자가 답하기를 “79세입니다” 가나제바께서 이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도에 들어가 진리를 통달하지 못하면 몸을 바꾸어 시주의 것을 갚아주나니, 너의 나이가 81세가 되면 그 나무에서 버섯이 나지 않으리라’

재단법인(財團法人)

  • 일정한 목적에 바쳐진 재산(재단)에 법적 인격이 부여된 법인.
  • 민법상 재단법인은 학술 · 종교 · 자선(慈善) · 기예(技藝) · 사교(社交) 기타 영리 아닌 사업을 목적으로 하여야 한다. 주로 공익(公益)을 목적으로 하는 재단법인이 대부분이지만, 공익에 한하지 않고 비영리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면 설립이 가능하다.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 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 ② 석존입멸후 오백 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 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 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곧 불멸(佛滅) 후 오랜 기간을 지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쇠퇴하는 시기.

원력(願力)

  • 원(願)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본원력(本願力) • 숙원력(宿願力) • 대원업력(大願業力) • 서원(誓願) • 행원(行願)이라고도 한다.

본원(本願)

  • 본홍서원(本弘誓願), 근본서원(根本誓願)의 준말. 본서(本誓) · 숙원(宿願) 등이라고도 한다.
  • 인위(因位 부처님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수행하고 있는 단계)의 서원. 모든 불보살님들이 아직 불과(佛果)를 얻기 이전의 과거세에서 일으킨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위로는 보리, 지혜를 추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는 것)’을 결정코 이루려는 맹세(서원). 본원에는 총원(總願)과 별원(別願)이 있다.
  • ① 총원(總願)—모든 불보살님들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서원, 사홍서원(四弘誓願).
  •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 가없는 중생을 맹세코 다 건지리이다.
  •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 끝없는 번뇌를 맹세코 다 끊으오리다.
  •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 한없는 법문을 맹세코 다 배우리이다.
  •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 위없는 불도를 맹세코 다 이루리이다.
  • ② 별원(別願)—불보살님마다 각자 중생제도의 인연에 따라 다르게 세운 서원(아미타불48원, 석가모니불의 오백대원, 약사여래12원 등등). 별원은 사홍서원의 구체적 표현.

불명(佛名)

  • 법명(法名).
  • ① 출가하여 절에서 행자(行者)로서 일정 기간 동안 수행한 뒤, 계(戒)를 받을 때 스승이 지어 주는 이름.
  • ② 스님이 불법(佛法)에 귀의(歸依)한 남녀신자에게 지어 주는 이름.

[참고] 송담스님(No.470)—1992년 4월 첫째 일요법회.

불법(佛法)에의 깊은 인연으로, 발심(發心)해서 진리를 향해서 살아가는 부처님의 아들딸로 새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의미로 불보살(佛菩薩)의 이름을 따서 불명으로 받는다. 더 철저히 말하면 그때마다 불명을 받을 수는 없지만, 참선 수행을 통해서 하루하루 새로 태어나야 하고 시간마다 새로 태어나야 한다.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法).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법. 부처님의 가르침.

정법(正法)

  • ① 올바른 진리.
  • ② 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 ③ 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호사다마(好事多魔 좋을 호/일 다/많을 다/마귀·마라·악마 마)

  • 좋은 일[好事]에는 흔히 시샘하는 듯이 안 좋은 일들이 많이 따름[多魔]. 일이 좋게 잘 진행될 때는 흔히 방해되는 일이 많음. 또는 그런 일이 많이 생김.

죽백천추(竹帛千秋)

  • 오랜 세월[千秋]의 역사[竹帛]에.

천추(千秋 일천 천/세월 추)

  • 길고 오랜 세월. 또는 먼 미래.

죽백(竹帛 대 죽/비단명주 백)

  • 서적이나 사기(史記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한 책)를 이르는 말. 종이가 발명되기 전에 대쪽이나 명주에 글을 적던 데서 유래되었다.

선방(禪房)

  • ① 참선(參禪)하는 방. 큰방. 선실(禪室).
  • ② 선원(禪院).
  • ‘선방에 간다’라는 말은 ‘참선하러 절에 간다’ 또는 ‘참선 수행에 들어간다’라는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