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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마상성(琢磨相成 쫄 탁/갈 마/서로 상/이룰 성)

  • 서로 탁마해서 공부를 완성한다.

탁마(琢磨 쫄 탁/갈 마)

  • ① 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② 옥이나 돌 따위를 쪼고 갊.
  • ③ 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것.
  • ④ 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것.

공안(公案)

  • 화두(話頭).
  • ① 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
  • ② 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 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 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 —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 화두에 참구(參句)와 참의(參意)가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참선(死句參禪)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참선(活句參禪)이다.

’학자를 눈을 멀려‘

  • 학자의 지혜의 눈을 잃게 하다.

눈[眼]

  • 눈[眼]은 법안(法眼)을 가리킨다. 지혜(智慧)의 안광(眼光). 법안(法眼)은 불법(佛法)의 바른 도리를 꿰뚫어 보는 지혜의 눈.

안광(眼光)

  • 눈빛. 시선(視線). 관찰하는 능력. 눈동자 또는 시력. 만법을 밝게 꿰뚫어보는 깨달음의 본성을 비유한다.

[참고 ①] 전강선사(No.012)—전강선사 일대기 제5호(경술1970년 12월 8일 새벽.음)

사자굴중(獅子窟中)에 무이수(無異獸)요. 사자굴 가운데에는 다른 짐승이 범틀 못헌 법이고. 불입호혈(不入虎穴)이면 쟁득호자(爭得虎子)제. 호랭이 구럭에 들지 아니허면 호랭이 새끼를 어떻게 얻을 것이냐? 선(禪)의 도리라는 것은 헐 수가 없드라 그 말이여.

그런 바른 눈[正眼]이 있을 것 같으면 큰스님 앞에 별도리라도 쓸 수 있어! 허지마는 눈[眼]도 없는 것이 그따구 짓 했다가는 어째? 참말로 못된 것이고, 참말로 건방진 것이고, 참말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활살같이 떨어지는 법이여. 못허고, 또 허들 못혀!
뭔, 내가 그러면은 ‘나는 그런 눈[眼]이 있어서 그랬다’ 그 말 같지마는, 눈[眼]이 있으면은 그 말 같다고 해서, 내가 거기에 무슨 뭐 뭣을 내가 두고 머물거릴 것이여? 뭐 거그서는 한번 아주 건방질 수도 있는 것이고, 막 들어서는 자리다 그 말이여. 안 헐 수 있어? 아무리 큰스님네지마는, 흙탕 속에 바로 떨어진 것 아닌가 말이여! (17분24초~18분47초)

[참고 ②]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76. (가로판 p79~80)

古德이 云, 只貴子眼正이언정 不貴汝行履處라 하시니라

옛 어른이 말씀하기를 「다만 자네의 눈 바른 것[眼正]만 귀하게 여길지언정, 자네의 행실은 귀히 여기지 않노라」 하시니라.

註解(주해) 昔에 仰山이 答潙山問云, 涅槃經四十卷이 總是魔說이니다 하니 此가 仰山之正眼也라 仰山이 又問行履處한대 潙山이 答曰, 只貴子眼正云云하시니 此所以先開正眼而後에 說行履也라 故로 云, 若欲修行인댄 先須頓悟라 하시니라

옛날 앙산이 위산스님의 물음에 답하기를 「열반경 사십 권이 모두 마군의 말입니다」 하니, 이것이 앙산의 바른 눈[正眼]이다。앙산이 다시 행실에 대하여 묻자, 위산스님이 대답하기를 「자네의 눈 바른 것[眼正]만 귀하게 여길 뿐이다。운운」 하시니 이것이 바른 눈[正眼]을 뜬 뒤에 행실을 말하게 되는 까닭이다。그러므로 「수행을 하려면 먼저 모름지기 몰록 깨쳐야 한다」 하시니라.

약인욕료지(若人欲了知) 삼세일체불(三世一切佛)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 만일 어떤 사람이 삼세(三世)의 일체 부처님을 알고자 하면 마땅히 법계의 본바탕[性]이 일체가 오직 마음으로 된 줄을 관찰하라.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 ‘삼라만상(森羅萬象) 모든 것이 오직 마음으로 되었다, 마음으로 이루어졌다’

[참고] 『화엄경(華嚴經)』 실차난타(實叉難陀 制譯) 제19권 ‘제20 야마궁중게찬품(夜摩宮中偈讚品)’에서 각림보살(覺林菩薩) 송(頌). 『대방광불화엄경 강설(19권)』 (여천 무비 강설 | 담앤북스) p133~142 참고.

爾時 覺林菩薩承佛威力 遍觀十方而說頌言 譬如工畵師 分布諸彩色 虛妄取異相 大種無差別 大種中無色 色中無大種 亦不離大種 而有色可得

그때에 각림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시방세계를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습니다. 비유하면 마치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여러 가지 색을 칠해 가면서 허망하게 여러 모양을 그리지마는 대종(大種 물감의 요소)은 차별이 없느니라. 대종 가운데 빛깔이 없고 빛깔 중에 대종이 없지만 그러나 또한 대종을 떠나서 빛깔을 찾을 수도 없느니라.

心中無彩畵 彩畵中無心 然不離於心 有彩畵可得 彼心恒不住 無量難思議 示現一切色 各各不相知 譬如工畵師 不能知自心 而由心故畵 諸法性如是 心如工畵師 能畵諸世間 五蘊悉從生 無法而不造

마음속에 그림이 없고 그림 속에 마음이 없지만 그러나 마음을 떠나서 그림을 찾을 수 없도다. 저 마음 항상 머물지 않고 한량없고 헤아릴 수도 없어 일체 빛깔을 나타내 보이지만 각각 서로 알지 못하도다.
비유하자면 마치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자기의 마음을 알지 못하지만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나니 모든 법의 성품도 그러하도다. 마음은 화가와 같아서 모든 세간을 그려 내나니 오온이 마음 따라 생기어서 무슨 법이나 못 짓는 것 없도다.

如心佛亦爾 如佛衆生然 應知佛與心 體性皆無盡 若人知心行 普造諸世間 是人則見佛 了佛眞實性 心不住於身 身亦不住心 而能作佛事 自在未曾有 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

마음과 같이 부처도 또한 그러하고 부처와 같이 중생도 그러하니 응당히 알라. 부처나 마음이나 그 성품 모두 다함이 없도다. 만약 어떤 사람이 마음의 작용이 모든 세간을 다 짓는 줄을 안다면 이 사람은 부처를 보아 부처의 참 성품 알게 되리라.
마음이 몸에 머물지 않고 몸도 또한 마음에 머물지 않지만 모든 불사(佛事)를 능히 지어 자재함이 미증유(未曾有)하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삼세(三世)의 일체 부처님을 알고자 하면 마땅히 법계의 본바탕[性]이 일체가 오직 마음으로 된 줄을 관찰하라.

뻑뻑이

  • 그러하리라고 미루어 헤아려 보건대 틀림없이. '벅벅이'보다 센 느낌을 준다.

구두선(口頭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 의리선(義理禪).
  • 이런 구두선(口頭禪) · 의리선(義理禪)은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해석하고 설명해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衆生心)이요 사량심(思量心)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