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11

Print

경계(境界)

  • ① 어떤 영역끼리의 한계. 또는 영역끼리의 사이, 접점.
  • ② 인식 또는 어떤 세력이 미치는 범위.

켕이

  • ‘커녕’의 사투리.

커녕

  • ① 체언의 뒤에 붙어, 어떤 사실을 부정하는 뜻을 강조할 뿐 아니라 그보다 못한 것까지 부정하는 뜻을 나타내는 보조사.
  • ② 체언의 뒤에 붙어, ‘그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도리어’의 뜻을 나타내는 보조사.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사견(邪見)

  • ① 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 ② 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 ③ 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수가 없는 것.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 시인행사도(是人行邪道) 불능견여래(不能見如來)

  • 만약 색상으로 나를 보려 하거나 음성으로 나를 구하려 하면 이 사람은 사도(邪道)를 행하는 것이요 능히 여래(如來)를 보지 못하리라.

[참고]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제26 '법신비상분(法身非相分)'

爾時 世尊 而說偈言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그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만약 색상으로 나를 보려 하거나 음성으로 나를 구하려 하면 이 사람은 사도(邪道)를 행하는 것이요 능히 여래(如來)를 보지 못하리라"

【함허(涵虛) 설의(說誼, 이치를 설함)】
色見聲求 是行邪道 作麼生 不行邪道去 但知聲色本非眞 自然不被聲色惑 見盡自於玄旨會 情忘能與道相親

색상으로 보고 음성으로 구하는 것은 사도(邪道)를 행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 삿된 도(道)를 행(行)하지 않겠는가?
다못 이 소리와 색상이 본래 참[眞]이 아닌 줄 알면 자연히 소리와 색상에 현혹을 받지 아니할 것이다. 소리를 듣고 색상(色相)을 보는 그 견(見)이 다하면, 자연히 현현(玄玄)한 뜻을 알게 되리라. 그래서 정(情)이 다하면 능히 도(道)와 더불어 서로 친(親)하게 될 것이다.

불급심사 공과일생(不急尋師空過一生)

  •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 보리달마(菩提達摩 Bodhidharma)의 저술로 전해지는 「달마대사 혈맥론(達摩大師血脈論)」에 있는 말씀.

[참고] 『선문촬요 禪門撮要 上 血脈論』 (경허성우 鏡虛惺牛 엮음)에서.

若不急尋師空過一生 然卽佛性自有 若不因師終不明了 不因師悟者萬中希有 若自己 以緣會合 得聖人意 卽不用參善知識 此卽是生而知之勝學也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불성은 스스로 가지고 있으나 스승을 인연하지 않으면 끝내 분명히 알지 못하니, 스승을 의지하지 않고 깨닫는 이는 만에 하나도 드물다. 만약 자기가 인연을 만나 성인의 뜻을 얻었다면 선지식을 찾을 필요가 없다. 이것은 태어나면서부터 아는[生而知之] 정말 뛰어난 학인이다.

若未悟解 須勤苦參學 因敎方得悟 若自明了 不學亦得 不同迷人

그러나 아직 깨닫지 못했으면 모름지기 부지런히 애써 선지식을 찾아가 배우라. 스승의 가르침으로 인하여 비로소 깨달을 수 있다. 만일 스스로 분명히 알았다면 배우지 않아도 얻을 수 있으니, 어리석은 사람과는 다르다.

마조원상(馬祖圓相) 공안

[참고 ①]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제5권 165칙 ‘원상(圓相)’ 공안.

馬祖因見僧參 畫一圓相云 入也打不入也打 僧便入 師便打 僧云和尙打某甲不得 師靠却拄杖 休去.

마조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와서 뵙자,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 동그라미를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이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 하고 물으시니, 그 스님이 원상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그 스님을 한 대 후려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습니다. 아무 말도 없이 가버리셨습니다.

[참고 ②] 송담스님(No.282) - 1986년 1월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2분 19초)

[마조원상공안]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을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이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 이 공안을 물은데 어떤 스님이 그 안에 들어갔어.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그 스님을 한대 후려쳤습니다. 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이랬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습니다. 아무 말 없이 그냥 방장(方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이 원상 안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한 그 공안에 그 스님이 턱 뛰어들어가는 도리는 무슨 도리며,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한 방을 후려치니까 그 스님이 그 방(棒)을 맞고서 하는 말이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또 그 스님이 그렇게 말한 데에 마조 스님이 아무 말없이 저리 가버렸으니... 이러한 공안에 확연(確然)히 의심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이러한 공안이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공안이라 하는데, 이것이 다 부처님과 조사가 씹다가 버린, 먹다가 버린 찌꺼기에 지나지 못한 것이기는 하나, 이러한 공안이 바로 학자(學者)의 소견(所見)을 가려보는 데에는 좋은 시금석(試金石)이 되는 것입니다.

답살(踏殺 밟을 답/죽일 살)

  • 짓밟아 죽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