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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음왕불(威音王佛)

  • (산스크리트어) Bhismagarjitasvararaja-Buddha. 『법화경』 상불경보살품(常不輕菩薩品)에 실려 있다。공겁(空劫) 때에 맨 처음 성불한 부처님이다.
  • 그러므로 「무한히 먼 때」 또는 「맨 처음」이란 뜻으로 쓰고, 따라서 종문(宗門)에서는 본분(本分) • 향상(向上) • 실제(實際) • 이지(理地)의 뜻을 표시하는 말로 쓴다。그리하여 향하(向下) • 사상(事相)은 위음왕불 이후라고 하는 것이다.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 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 ② 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달마대사(達磨大師, 達摩大師 ?~495, ?~436, ?~528, ?~536 등)

  • (산스크리트어) Bodhi-dharma. 중국 선종의 시조.

[참고] 달마대사의 전기에 관한 자료는 『낙양가람기(洛陽伽藍記)』(574년 성립), 『이입사행론(二入四行論)』 담림(曇林)의 「서문」(600년경), 『당고승전(唐高僧傳)』(645년), 『전법보기(傳法寶紀)』(712년경), 『능가사자기(楞伽師資記)』(708년), 『역대법보기(歷代法寶記)』(774년경), 『보림전(寶林傳)』(801년), 『조당집(祖堂集)』(952년) 등이 있으며, 『보림전』의 기록을 근거로 한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1004년)과 『전법정종기(傳法正宗記)』(1061년) 등에도 수록되어 있다.

달마대사는 남인도의 향지왕(香至王)의 셋째 아들로서, 출가하여 반야다라 존자(般若多羅尊者)의 법을 받았다。본국에서 오래 교화하다가 양(梁)나라 무제(武帝) 대통(大通) 1년(527)에 배로 광동성 광주(廣州)에 닿았다.
금릉(金陵)에 이르자 무제가 묻기를 『짐이 절을 짓고 탑을 쌓고 경을 쓰고 중을 득도시키기를 한정없이 하였는데, 어떤 공덕이 있겠읍니까?』
(달마) 『조금도 공덕이 없습니다』

(무제) 『왜 그러합니까?』
(달마) 『그것은 인간이나 천상의 작은 복이며 유루(有漏) 공덕이 될 뿐이지요』

(무제) 『그러면 어떤 것이 참 공덕입니까?』
(달마) 『맑은 지혜는 묘하게 밝아서 두렷이 비치어 있을 뿐이라, 세상의 함이 있는(有爲) 일로써 구할 수가 없는 것이요』

(무제) 『어떤 것이 거룩한 법의 첫째 가는 도리(聖諦第一義)입니까?』
(달마) 『훤칠하여 거룩한 것도 없습니다』

(무제) 『그러면 짐을 대하여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달마) 『모르겠읍니다[不識]』

무제는 그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푸대접하였다.

대사는 양자강을 건너 숭산(嵩山) 소림사(少林寺)의 석굴에서 구년 동안 면벽(面壁)하고 있었다。혜가(慧可)가 와서 지성으로 법을 물었다。『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주소서』
『편안하게 하여 줄 터이니 너의 마음을 가져오너라』

『마음을 찾아도 얻을 수가 없읍니다』
『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였다』 이에 혜가는 깨쳤다.

그 뒤에 세상 인연이 오래지 못할 것을 알고, 제자들을 불러서 각기 소견을 말하라 하였다.
도부(道副)는 『문자에 국집할 것도 없고 문자를 버릴 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너는 나의 가죽을 얻었다』

비구니 총지(總持)는 말하기를 『제가 본 바로는 아난이 아촉불국을 한 번 보고(阿難見阿閦佛國)는 다시 보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너는 나의 살을 얻었다』

도육(道育)은 『오온(五蘊)이 본래 비었으므로 한 법도 얻을 것이 없읍니다』
『너는 나의 뼈를 얻었다』

혜가는 다만 나와서 절하고 제자리에 물러가 섰다.
이에 『네가 나의 골수를 얻었다』 하고 부처님의 의발(衣鉢)과 아래와 같은 전법게(傳法偈)를 혜가에게 주었다. 「내가 이 땅에 온 뜻은 오직 법을 전하여 중생을 건질 뿐, 한 꽃이 피어 다섯 잎 벌어지면 많은 열매가 저절로 맺히리(吾本來玆土 傳法救迷情 一華開五葉 結果自然成)」

위(魏)나라 효명제(孝明帝)가 세 번이나 모시려 하였으나, 굳이 사양하고 예물만은 부득이 받았다。그러나 광통율사(光統律師) 같은 이들은 그를 시기하여 다섯 번이나 음식에 독약을 넣었지마는 번번이 토하여 무사하였는데, 여섯 번째는 그대로 두어 그 중독으로 인하여 입적하자 웅이산(熊耳山)에 매장하였다.
그 후에 위나라 사신 송운(宋雲)이 서역(西域)에 갔다오다가, 총령(葱嶺)에서 달마대사가 맨발 벗고, 신 한 짝을 들고 가는 것을 만나 보고 와서 그 묘를 파보니, 신 한 짝만 남았더라고 하는 전설이 있다.

초조(初祖)

  • 한 종(宗)을 처음 세운 스님.

동토(東土)

  • 중국을 가리킨다. 인도를 서천(西天)이라 하는 것에 대한 대칭어.

격외(格外 격식 격/바깥 외)

  • 규정되고 고체화된 세간적(世間的)인 척도를 초월하는 것. 즉 분별로는 헤아릴 수 없는 것.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실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 격(格)은 격식(格式) · 규격(規格) · 법칙 · 규정 등을 말하지만 넓은 뜻으로는 세간(世間)의 척도라는 뜻이다.

[참고] 『벽암록(碧巖錄)』 (원오극근) 제9칙 ‘조주사문(趙州四門)’ 평창(評唱) 참고.

大凡參禪問道 明究自己 切忌揀擇言句 何故 不見趙州擧道 「至道無難唯嫌揀擇」

무릇 참선하며 도를 묻는 것은 자기를 밝히고자 함이니, 절대로 언구로 간택해서는 안 된다. 무엇 때문인가? 조주 스님이 “지극한 도는 어려울 것이 없으니 오직 간택함을 꺼릴 뿐이다”라고 한 말을 듣지 못했는가?

又不見雲門道 「如今禪和子 三箇五箇聚頭 口喃喃地便道 『這箇是上才語句 那箇是就身處打出語』 不知古人方便門中 爲初機後學未明心地 未見本性 不得已而立箇方便語句 如祖師西來 單傳心印 直指人心 見性成佛 那裏如此葛藤 須是斬斷語言 格外見諦 透脫得去 可謂如龍得水 似虎靠山」

또한 듣지 못했는가? 운문 스님이 말하기를 “요즈음 선수행자들은 네댓 명이 머리를 맞대고 입을 떠벌리면서 ‘이것은 재능이 뛰어난 자가 한 말이며 저것은 자신의 체험에서 나온 말이다’고들 한다. 이는 고인이 방편문에서, 처음 배우는 후학들이 마음을 밝히지 못하고 본성을 알아차리지 못했으므로 부득이 방편으로 언구를 사용하게 되었음을 모른 것이라 하겠다.
조사가 서쪽에서 오셔서, 심인(心印)을 전하여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直指人心]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루게 하셨는데[見性成佛], 어느 곳에 이와 같은 언어문자가 있었겠는가? 모름지기 언어를 끊어 버리고 격외(格外)에서 참다운 이치[諦]를 보아 투철하게 벗어나야 용이 물을 얻은 것 같고 범이 산을 의지한 것과 같다”

격외선(格外禪)

  • 언어 · 문자로 의론할 수 있는 격식을 초월한 선법. 조사선(祖師禪)에서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이심전심(以心傳心) 교외별전(敎外別傳)으로 깨우치는 것을 전하는 선을 말한다.

교외별전(敎外別傳)

  • 부처님께서 말씀으로써 가르친 바를 모두 교(敎)라 하는데, 교 밖에 따로 말이나 글을 여의고[不立文字] 특별한 방법으로써 똑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성품을 보고 대번에 부처가 되게 하는[直指人心 見性成佛] 법문이 있으니 그것이 곧 선법(禪法)이다. 교는 말로나 글로 전해 왔지마는 선법은 마음으로써 전하여 왔으므로 이른바 삼처전심(三處傳心) 같은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 刊) 세로판 p28, p34. 가로판 p29, p35.

世尊 三處傳心者 爲禪旨 一代所說者 爲敎門 故曰 禪是佛心 敎是佛語

세존께서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은 선지(禪旨)가 되고, 한평생 말씀하신 것은 교문(敎門)이 되었다. 그러므로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敎)는 부처님의 말씀이니라.

是故 若人 失之於口則拈花微笑 皆是敎迹 得之於心則世間麤言細語 皆是敎外別傳禪旨

그러므로 누구든지 말에서 잃어버리면, 꽃을 드신 것이나 빙긋이 웃은 것[拈花微笑]이 모두 교의 자취[敎迹]만 될 것이요. 마음에서 얻으면, 세상의 온갖 잡담이라도 모두 교 밖에 따로 전한 선지[敎外別傳禪旨]가 되리라.

선종(禪宗)

  • 문자를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선(禪)을 닦아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체득하는 깨달음에 이르려는 종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