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81

Print

방(棒)

  • 몽둥이. 또는 주장자(柱杖子). ‘방망이 봉’자이지만 불교에서는 덕산방(德山棒) 등의 용례에 따라 ‘방’으로 읽는다.

방할(棒喝)

  • 선가(禪家)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직접 체험의 경지를 나타날 때, 또는 수행자를 점검하며 꾸짖거나 호통칠 때, 방망이나 주장자(柱杖子)를 세우거나 그것으로 수행자를 몽둥이질하는 것을 방(棒)이라 하고, 그러한 때 크게 소리를 내지르는 것을 할(喝)이라 한다.
  • 덕산선감(德山宣鑑)은 방으로 가풍(家風)을 삼았으며, 임제의현(臨濟義玄)은 할로써 지도방법을 삼았다. 이것을 두고 ‘덕산방(德山棒)’, ‘임제할(臨濟喝)’이라 한다.

또 “심마물고?” 세 번 묻는디, 주먹을 척!―이것이 죽었다 그 말이여. 응, 이것 이 말 배때기 바로 들어가고, 나귀 배때기 바로 들어간 것이여!

  • 여태마복(驢胎馬腹).

여태마복(驢胎馬腹 나귀·당나귀 여/태·태반 태/말 마/배 복)

  • 나귀의 태(胎)와 말의 뱃속[腹]. 곧 나귀나 말의 태 속으로 들어가는 것. 축생으로 윤회하는 것을 가리킨다. 여우두리생(驢牛肚裏生) · 변입여태마두리(變入驢胎馬肚裏)와 같은 뜻이다.
  • -여우두리생(驢牛肚裏生 나귀·당나귀 여/소 우/배 두/속·뱃속·태 리/날 생) ; 나귀나 소의 배에서 태어난다는 말. 축생으로 태어난다는 뜻. 해탈하지 못하여 축생으로 윤회전생하는 것을 말한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63~164. (가로판 p170~171)

凡人이 臨命終時에 若一毫毛라도 凡聖情量이 不盡커나 思慮를 未忘하면 向驢胎馬腹裡하야 托質하며 泥犂鑊湯中에 煮煠하다가 乃至依前再爲螻蟻蚊虻이니라

대저 사람이 임종(臨終)에 임할 때에 만약 한 털끝만큼이라도 범부라 성현이라 하는 정량(情量)을 다하지 못하거나 생각을 잊지 못하면, 나귀배와 말의 뱃속을 향하여 몸을 의탁하며 지옥의 끓는 가마 속에 처박히다가, 이전과 같이 다시 개미나 모기 등이 됨에 이르리라.

註解(주해) 白雲이 云, 設使一毫毛나 凡聖情念이 淨盡이라도 亦未免入驢胎馬腹中이라 하시니 二見이 星飛하면 散入諸趣하리라

백운 선사가 이르기를 「설사 털끝만큼의 범부다 성인이다 하는 생각이 남은 바가 없다 하더라도, 또한 나귀나 말의 뱃속에 들어가는 것을 면치 못하리라」고 하시니 두 소견이 번득이면 여러 길[諸趣]에 들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