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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 대승불교도들의 실천덕목 중 하나. 상(相)에 머뭄[住]이 없는[無] 보시. 집착 없이 베푸는 보시를 의미한다.
  • 보시는 불교의 육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로서 남에게 베풀어주는 일을 말한다. 무주상보시는 ‘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베풀었다’라는 자만심 없이 온전한 자비심으로 베풀어주는 것을 뜻한다.

[참고] 『금강경오가해』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무비 역해 | 불광출판부) p141~145, 『금강경오가해 설의 - 육조스님 금강경』 (원순 옮김 | 도서출판 법공양) p101~104.

復次 須菩提 菩薩 於法 應無所住 行於布施 所謂 不住色布施 不住聲香味觸法布施 須菩提 菩薩 應如是布施 不住於相 何以故 若菩薩 不住相布施 其福德 不可思量

또 수보리야, 보살은 법(法)에 응당히 '머문 바 없이[無所住]' 보시를 할지니, 이른바 색(色)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며 성향미촉법(聲香味觸法)에도 머물지 않고 보시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응당 이와 같이 보시하여 상(相)에 머물지 않아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만약 보살이 상(相)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그 복덕은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육조 스님 해의解義)
부차(復次)라 한 것은 앞을 이어서 뒷말을 일으키려는 것이니라.
범부(凡夫)의 보시는 다만 아름다운 외모와 오욕의 쾌락을 구하는 고로, 그 과보가 다하면 곧 삼악도(三惡途 지옥,아귀,축생)에 떨어지므로, 세존께서 크나큰 자비로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무상보시(無相布施)’를 행하도록 가르치시니, 아름다운 외모나 오욕(五欲)의 쾌락을 구하지 않고, 다만 안으로는 인색한 마음을 없애고 밖으로는 일체 중생을 이익케 하기 위함이니, 이와 같이 상응(相應)하는 것이 ‘색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色布施)’이니라.

무상(無相)의 보시를 한다는 것은, '보시한다'는 마음도 없고, 베푸는 물건도 없으며, 받는 사람도 분별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상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相布施)'라 하느니라. 보살이 보시(布施)를 행할 때 마음으로 바라는 것이 없으면 그 얻는 복이 시방(十方)의 허공과 같아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일설에 '보(布)'란 '普(넓다)'요, '시(施)'란 '散(사방에 흩어버린다)'이니, 가슴 가운데 있는 모든 망념·습기·번뇌를 널리 흩어버려 사상(四相)도 끊어지고 마음에 전혀 쌓여 있지 않는 것이 '참 보시(眞布施)'라 하며, 또 일설에는 '보(布)'란 '普'니 육진 경계(六塵境界)에 머물지 않으며 유루(有漏)의 분별도 하지 않아 오직 항상 청정한 데 돌아가서 만법(萬法)이 공적(空寂)함을 요달함이니라.

만약 이 뜻을 요달하지 않으면 오직 온갖 업(業)만 더하므로, 모름지기 안으로 탐애(貪愛)를 없애고 밖으로 보시를 행해서 안밖이 상응하여야 무량한 복을 얻게 될 것이니라.

다른 사람들의 악행을 보아도 그 허물을 보지 않아서 자성(自性) 가운데 분별을 내지 않음이 '이상(離相)'이 되느니라.
가르침에 의해 수행해서 마음에 능소(能所)가 없는 것이 곧 선법(善法)인 것이라. 수행인이 마음에 능소가 있으면 선법이라 할 수 없고, 능소심(能所心)이 멸하지 않으면 마침내 해탈치 못하니, 순간순간 항상 반야지혜를 행하여야 그 복이 무량무변한 것이니라.

이같은 수행에 의지하면 일체 인천(人天 사람과 하늘신)의 공경하고 공양함이 따르니 이것을 복덕(福德)이라 하도다. 항상 부주상보시(不住相布施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보시)를 행하여 널리 일체 모든 중생들을 공경하면 그 공덕이 끝이 없어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이 지옥에 떨어진 중생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끊임없이 고통을 받기 때문에 무간(無間)이라 한다.
  •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나쁜 마음으로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간탐(慳貪 아낄·인색할 간/탐할 탐)

  • 몹시 인색하고 욕심이 많음.

무간업(無間業)

  • 무간악업(無間惡業). 무간죄(無間罪).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지게 하는 업(業)으로 오역죄(五逆罪)를 가리키는 말.
  • 오역죄, 곧 다섯 가지 무간업은 1.아버지를 시해하는 것[殺父]. 2.어머니를 시해하는 것[殺母]. 3.아라한을 죽이는 것[殺阿羅漢]. 4.승단의 화합을 파괴하는 것[破僧]. 5.부처님의 몸에 피를 나게 하는 것[出佛身血].

삼도고본인하기(三途苦本因何起)
지시다생탐애정(只是多生貪愛情)

  • ‘지옥 · 아귀 · 축생, 삼악도에 받는 고통 무슨 탓인가? 오랜 세월 탐내고 사랑한 정 때문’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야운스님의 「자경문(自警文)」 게송.

삼도(三途, 三塗)

  • 악한 일을 한 중생이 그 과보로 받는다는 3가지 미혹한 생존. 지옥 · 아귀 · 축생의 생존. 삼악도(三惡途), 삼악취(三惡趣)라고도 한다.
  • 죄악을 범한 결과로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곳으로 즉 지옥의 고통과, 아귀의 굶주림과, 축생의 우치(愚癡 어리석음)에서 방황하게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