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자(柱杖子 기둥·버틸 주/지팡이 장/접미사 자)
- 수행승이 갖는 긴 지팡이. 설법(說法)할 때나, 외출할 때에 지니는 지팡이. 주장자(拄杖子)와 같음.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조사(祖師)
- ① 1종1파의 선덕(先德)으로서 후세 사람들의 귀의 존경을 받는 스님。 보통은 1종1파를 세운 스님을 부르는 말。
- ② 선가에서는 달마스님을 말한다。
- ③ 불심종(佛心宗)을 깨달아서 이를 전하는 행(行)과 해(解)가 상응(相應)하는 도인.
‘미개구착(未開口錯)이면 제이구(第二句)인디’
[참고 ❶] 『임제록(臨濟錄)』
山僧今日見處 與祖佛不別 若第一句中得 與祖佛爲師 若第二句中得 與人天爲師 若第三句中得 自救不了.
산승의 견처(見處)는 불조(佛祖)와 다르지 않다. 제1구에 깨달으면 불조(佛祖)의 스승이 되고, 제2구에 깨달으면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고, 제3구에 깨달으면은 제 몸도 구제하지를 못한다.
[참고 ❷]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刊) p207. (가로판 p212)
[ 三句 ] 第一句는 喪身失命이요 第二句는 未開口錯이요 第三句는 糞箕掃箒라.
삼구 : 첫째 구는 몸 죽고 목숨 잃는 것이요, 둘째 구는 입을 열기 전에 그르쳤고, 세째 구는 똥삼태기와 비이니라.
[참고 ❸] 『西山大師의 禪家龜鑑硏究』 (신 법인著, 김영사) p360~361
第一句 喪身失命 第二句 未開口錯 第三句 糞箕掃箒.
즉 第一句는 身命을 喪失하고, 第二句는 입도 열기 전에 틀리며, 第三句는 便을 치우는(糞掃) 箕掃라는 것이다.앞에서 본 바에 의하면 臨濟는 ‘如何是第一句오’라는 學僧의 물음에, ‘三要印開朱點側 未容擬議主賓分’이라고 답하였다. 그리고 그의 어록에, ‘若第一句中得 與祖佛爲師 若第二句中得 與人天爲師 若第三句中得 自救不了’라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第一句중에서 얻게 된다면 祖師와 佛陀와 더불어 스승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선가귀감)는 第一句에 ‘喪身失命’이라고 하여 있다.
第二句는 ‘未開口錯’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風穴昭禪師의 說이다. ‘人天眼目‘에는 ‘如何是第二句’下에 師云이라 하여 臨濟의 第二句語가 있고, 다음에 風穴云의 ‘未開口前錯’(『인천안목』 권1 三句)이 있다.(問如何是第二句. 師云, 妙解豈容無著問, 漚和爭負截流機. 穴云, 未開口前錯)
第三句下의 ‘糞箕掃箒’는 雲峯悅禪師의 說이다. 이 역시 ‘如何是第三句’ 밑에 師云이라 하여 臨濟의 第三句語가 있고, 그 다음에 風穴과 道吾의 言及이 있고 이어서 ‘峯云 糞箕掃箒’(『인천안목』 권1 三句)라고 있다.(問如是第三句. 師云, 看取棚頭弄傀儡. 抽牽都來裏有人. 穴云, 明破則不堪. 吾云, 頭上一堆塵. 脚下三尺土. 印云, 西天此土. 峯云, 糞箕掃箒)
참선(參禪)
- ① 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 ② 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미심수도(迷心修道) 단조무명(但助無明)
- ‘미욱한 마음으로 도를 닦는 것은 오직 무명만 도와 줄 뿐이니라’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82. (가로판 p86)
迷心修道하면 但助無明이니라.
미욱한 마음으로 도를 닦는 것은 오직 무명만 도와 줄 뿐이니라.
(註解) 悟若未徹이면 修豈稱眞哉리요 悟修之義는 如膏明이 相賴하고 目足이 相資니라.
철저히 깨치지 못하였다면 어찌 참되게 닦을 수 있으랴! 깨침과 닦는 것은 마치 기름과 불이 서로 따르고, 눈과 발이 서로 돕는 것과 같으니라.
무명(無明)
- (산스크리트어) avidya. 「어리석은 마음」 「어두컴컴한 마음」을 이름.
-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는 이것을 두 가지로 나누어, 법계(法界)의 참 이치에 어둡게 된 맨 처음 한 생각을 근본무명(根本無明)이라 하고, 이 근본무명으로 말미암아 가늘거나 거칠거나 한 온갖 망녕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지말무명(枝末無明)이라 하였다.
화두(話頭)를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송담스님(No.088), 참선법 A.
〇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차고, 온 세계가 가득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54분46초) [ 참선법 A, 송담스님(No.088) ]〇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78분22초) [ 참선법 A, 송담스님(No.088)]
일향간(一餉間 한 일/식경食頃·밥 한 끼 먹을 정도의 짧은 시간 향/사이 간)
- ‘한 밥 먹을 사이’로, ‘짧은 시간 동안’을 뜻한다.
설찬히
- 솔찬이. 솔찬히. ‘아주 많이. 상당히. 제법’의 사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