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이목이청현음(側耳目而聽玄音)
- '눈과 귀를 기울여 현미(玄微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깊고 미묘함)한 소리를 들으며'
[참고]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에서.
聞法之次 如履薄氷 必須側耳目而聽玄音 肅情塵而賞幽致 下堂後 默坐觀之 如有所疑 博問先覺 夕惕朝詢 不濫絲髮
법문을 들을 때에는 얇은 얼음을 밟듯이 하여, 반드시 눈과 귀를 기울여 현미(玄微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깊고 미묘함)한 소리를 들으며, 마음속에 번뇌를 맑히고 그윽한 이치를 완상(玩賞)하다가, 법당에서 내려온 뒤에는 묵묵히 앉아 관하되, 만일 의심스러운 바가 있으면 먼저 깨우친 이에게 널리 물으며, 저녁에 근념(勤念)하고 아침에 물어서 실오라기 털끝만큼도 넘기지 말지니라.
’언하(言下)에 툭 깨 버려‘
- 언하대오(言下大悟).
언하대오(言下大悟)
- 말 아래에 크게 깨닫는다. 말(법문) 듣다 깨닫는다. '직하흔번(直下掀飜 바로 뒤집다)'도 같은 뜻의 말이다.
언하(言下)
- [주로 ‘언하에’의 꼴로 쓰여]말이 떨어진 바로 그때. 또는 말을 하는 그 즉시.
[참고] 송담스님(No.157)—전강조실스님 7주기 추모재(81.12.02.음)
전강 조실 스님께서 평상(平常)에 법문하시기를 “언하(言下)에 대오(大悟)라, 말 아래 크게 깨달으라” 하셨습니다.
말은, 꼭 ‘선지식이다’라고 널리 알려진 그분의 말씀만이 말씀이 아니고 바람소리, 차 소리, 새 우는 소리, 물 흐르는 소리, 우리 귀를 통해서 들을 수 있는 모든 소리가 불보살의 법문이요 선지식의 법문인 것입니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색상도 불보살의 모습이요, 법문이요, 진리의 표현인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들이 어떻게 얼마만큼 간절히 그리고 철저하게 분심(憤心)과 신심(信心)을 내느냐 거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 사유하고 판단함.
학자(學者)
- 학인(學人).
- ① 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수도(修道)의 성자.
- ② 수행승. 선(禪)을 닦는 수행승.
- ③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스님.
종사(宗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조사(祖師)와 같다.
‘종사(宗師)가 거법(據法)에 이언(離言)이여’
- ‘종사가 법에 의거하여 말을 여의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45~48. (가로판 p47~50)
故로 學者는 先以如實言教로 委辨不變隨緣二義가 是自心之性相이며 頓悟漸修兩門이 是自行之始終然後에 放下敎義하고 但將自心現前一念하야 參詳禪旨則必有所得하리니 所謂出身活路니라
그러므로 배우는 이는 먼저 부처님의 실다운 가르침으로써 변하지 않는 것[不變]과 인연 따르는[隨緣] 두 가지 뜻[二義]이 내 마음의 성품[性]과 형상[相]이며, 단박 깨치고[頓悟] 점점 닦는[漸修] 두 가지 문[兩門]은 공부의 시작과 끝임을 자세히 가려 안 뒤에, 교(敎)의 뜻을 버리고 오로지 그 마음이 뚜렷이 드러난 한 생각으로써 참선한다면, 반드시 얻는 바가 있을 것이니, 이른바 뛰쳐나오는 살 길이니라.
(註解) 上根大智는 不在此限이나 中下根者는 不可躐等也니라 敎義者는 不變隨緣과 頓悟漸修가 有先有後요 禪法者는 一念中에 不變隨緣과 性相體用이 元是一時라 離卽離非나 是卽非卽이니 故로 宗師는 據法離言하야 直指一念하야 見性成佛耳라 放下敎義者가 以此라
【 明歷歷時에 雲藏深谷하고 深密密處에 日照晴空이로다상근대지(上根大智)는 더 말할 것 없지마는, 중근기 하근기는 함부로 건너뛰어서는 안 된다。교(敎)의 뜻이란 변하지 않는 것[不變]과 인연을 따르는 것[隨緣], 단박 깨치는 것[頓悟]과 점점 닦는 것[漸修]이 앞뒤가 있다는 말이요, 선법(禪法)이란 한 생각 가운데 변하지 않는 것[不變]과 인연을 따르는것[隨緣]과 성품과 형상[性相]과 체(體)와 용(用)이 본래 한때이므로, 곧 그것도 아니며 아닌 것까지도 아니나, 곧 그것도 되며 아닌 것도 되는 것이다。그러므로 종사(宗師)는 법에 의거하여 말을 여의고 바로 한 생각을 가리켜서 성품을 보고 부처가 되게 하는 것이니, 교(敎)의 뜻을 버린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 환히 밝은 때에 깊은 골에 구름 끼고, 그윽하게 고요한 곳 맑은 하늘 해가 떴네.
이의(二義)
- 변하지 않는 것[不變]은 성품의 이치이며 자체이고, 인연 따르는 것[隨緣]은 형상이며 작용이다.
양문(兩門)
- 불도를 배워 닦는 길은 먼저 깨치고 나서 차츰차츰 오래 닦아야 한다。깨치지 않고서는 바르게 닦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그러므로 돈오(頓悟)가 시작이고 점수(漸修)가 끝이 되는 것이다.
방하교의(放下敎義)
- 공부하는 이에게 있어서 경전(經典)은 마치 여행하는 이의 노정기(路程記)와 같다。길을 안 뒤에는 책을 덮어 놓고 부지런히 걸어가야 할 것이다。그러므로 「교를 버리고 선에 들어간다[捨敎入禪]」고 하는 것이다.
출신활로(出身活路)
- 번뇌의 불집[火宅]과 망상의 고생 바다[苦海]에서 아주 뛰어나서 큰 자유와 큰 해탈을 얻는 길 곧 조사선(祖師禪)의 바른 길을 이름이다.
원시일시(元是一時)
- 부처님은 많은 중생을 상대로 말씀하여 낮고 얕은 곳으로부터 높고 깊은 데로 인도하기 위하여, 처음에는 모든 것을 분명하게 선후(先後) • 시종(始終)의 온갖 차별이 있는 것으로 가르쳤지마는, 참선 문중에서는 묘한 이치를 바로 가르치므로 성(性) • 상(相) • 체(體) • 용(用)이 모두 한 생각 가운데 있는 것을 말하게 된다。변하지 않는 것이 곧 성품이며 체(體)이고, 인연 따르는 것이 곧 형상이며 용(用)이다.
이즉이비 시즉비즉(離卽離非 是卽非卽)
- 진여문(眞如門)에서 본다면, 만법은 다 똑같은 것이다。이것을 「즉(卽) = 곧 그것」이라 한다。그러나 차별문(差別門)에서 보게 되면 삼라만상(森羅萬象)이 완연히 벌어져 있는 것이다。이것을 「비(非) = 아니다」 또는 「다르다」라고 한다. 그렇지만 본래 하나도 없는 것이기 때문에, 진여문과 차별문이 둘 아닌 동시에 하나도 아니며, 다른 동시에 곧 같은 것이다。그리하여 차별이 곧 평등이며, 모순(矛盾)이 곧 조화(調和)다。「즉(卽)도 여의고 비(非)도 여의고, 시(是)에도 즉(卽)하고 비(非)에도 즉한다」하여 이것을 쌍차쌍조(雙遮雙照)라고 하는 것이다.
종사(宗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조사(祖師)와 같다.
조사(祖師)
- ① 1종1파의 선덕(先德)으로서 후세 사람들의 귀의 존경을 받는 스님。 보통은 1종1파를 세운 스님을 부르는 말。
- ② 선가에서는 달마스님을 말한다。
- ③ 불심종(佛心宗)을 깨달아서 이를 전하는 행(行)과 해(解)가 상응(相應)하는 도인.
양구(良久)
- 한참 말이 없이 침묵하고 있는 것인데, 그 첫 기록으로는 어떤 외도(外道)가 부처님께 묻기를 『말씀하지도 말고, 말씀 안 하지도 말고 진리를 가르쳐 주소서』 하는데, 부처님은 양구하였다。그러자 그 외도는 깨치고 나서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 또 유마경에 둘 아닌 법(不二法)에 대하여 여러 보살들이 제각기 말하는데, 유마힐은 양구하여 여럿의 칭찬을 받았다。그 뒤로 종문(宗門)에서 법담(法談)하는데 이 특별한 수단을 많이 쓴다.
[참고] 『선문염송 · 염송설화(禪門拈頌 · 拈頌說話)』 제1권. (혜심, 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114 참고.
제 16칙. 「양구(良久)」
世尊因有外道問 不問有言 不問無言 世尊良久 外道讚歎云 世尊 大慈大悲 開我迷雲 令我得入 外道去後 阿難問佛云 外道有何所證 而言得入 佛言如世良馬 見鞭影而行세존께 어떤 외도가 물었다. “말 있음으로도 묻지 않고 말 없음으로도 묻지 않겠습니다”
세존께서 양구(良久)하셨다. 그러자 외도가 찬탄하여 말하였다. “세존께서 대자대비하시어 저의 미혹의 구름을 걷어 주셔서 저로 하여금 깨달아 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물러갔다.외도가 떠난 뒤에 아난이 부처님께 물었다. “외도가 무엇을 증득했기에 ‘깨달아 들었다’ 하였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세간의 좋은 말[馬]은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도 달리는 것과 같으니라”
방할(棒喝)
- 선가(禪家)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직접 체험의 경지를 나타날 때, 또는 수행자를 점검하며 꾸짖거나 호통칠 때, 방망이나 주장자(柱杖子)를 세우거나 그것으로 수행자를 몽둥이질하는 것을 방(棒)이라 하고, 그러한 때 크게 소리를 내지르는 것을 할(喝)이라 한다.
- 덕산선감(德山宣鑑)은 방으로 가풍(家風)을 삼았으며, 임제의현(臨濟義玄)은 할로써 지도방법을 삼았다. 이것을 두고 ‘덕산방(德山棒)’, ‘임제할(臨濟喝)’이라 한다.
제일구(第一句)
- ① ‘처음 한마디 말’이니 불교의 핵심도리를 드러내는 첫번째 말.
- ② 말로써 표현할 수 없고 생각으로 개념 지을 수 없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以心傳心) 진리를 가리키는 말.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刊) p207. (가로판 p212)
[ 三句 ] 第一句는 喪身失命이요 第二句는 未開口錯이요 第三句는 糞箕掃箒라.
삼구 : 첫째 구는 몸 죽고 목숨 잃는 것이요, 둘째 구는 입을 열기 전에 그르쳤고, 세째 구는 똥삼태기와 비이니라
[참고] 『임제록(臨濟錄)』
山僧今日見處 與祖佛不別 若第一句中得 與祖佛爲師 若第二句中得 與人天爲師 若第三句中得 自救不了.
산승의 견처(見處)는 불조(佛祖)와 다르지 않다. 제1구에 깨달으면 불조(佛祖)의 스승이 되고, 제2구에 깨달으면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고, 제3구에 깨달으면은 제 몸도 구제하지를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