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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과자책(悔過自責 뉘우칠 회/허물·잘못 과/스스로 자/꾸짖을 책)

  • 허물을 뉘우쳐[悔過] 스스로[自] 책망(責望 잘못을 나무라거나 꾸짖으며 못마땅하게 여김)함.

도인(道人)

  • ① 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 ② 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퇴속(退俗 물러날·돌아갈 퇴/세상 속)

  • 승려가 도로 세속(世俗)으로 돌아감[退].

상견(相見)

  • 상(相)이 있다는 견해.

상(相)

  • ① 모습, 형태. 상대어는 성(性)으로 본래 지니고 있는 성질을 가리킨다.
  • ② 특징, 특질.
  • ③ 생각, 관념, 상(想)과 같음.
  • ④ 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도(道)

  • ① 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 구역(舊譯)에서는 도(道)라 한역(漢譯)하고, 신역(新譯)에서는 각(覺)이라 한역하고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 ②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 ③ 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 ④ 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당래교주(當來敎主)

  • 장래의 교주(敎主), 미륵불(彌勒佛)을 말한다.

미륵(彌勒)

  • 대승보살. (산스크리트어) Maitreya. 매달려야(梅呾麗耶), 매달례야(昧怛隷野) 등이라고 음사하고, 한역하여 자씨(慈氏). 미륵은 성씨이고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 막승(莫勝)이라 번역.
  •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 석가모니부처님 입멸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부처님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 한다.
  • 현재는 보살이기 때문에 미륵보살(彌勒菩薩)이라고도 하고, 미래에 성불할 것이 예정된 보살이기 때문에 미륵불(彌勒佛)이라고도 한다.
  •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處]를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천 불의 제5불(佛).

용화교주(龍華敎主)

  • 당래용화교주(當來龍華敎主), 미래세에 용화회상(龍華會上)에서 중생을 제도할 교주, 미륵불(彌勒佛)을 말한다.

포대화상(布袋和尙)

[참고] 『전등록 3』(제27권) (동국역경원 | 김월운 옮김) p459-463 참고.

중국 후량(後梁) 때의 스님. 절강성(浙江省) 명주(明州) 봉화현(奉化縣) 출신. 자기가 자칭하는 이름은 계차(契此)였다. 체구가 비대하고, 이마에 주름이 잡히고, 배가 불룩하고, 말이 일정하지 않고, 아무 곳에서나 자고 누웠다.
항상 지팡이에 베자루 하나를 걸어 메고, 소용되는 물건은 모두 그 속에다 넣었다. 저자나 마을에 들어갔다가 물건을 보면 달라고 하여, 먹을 것은 무엇이나 주기만 하면 받아 먹으면서 조금씩 나누어 그 자루에 넣곤 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별호를 지어 장정자(長汀子) 또는 포대화상(布袋和尙)이라고 불렀다. 혹 사람들에게 무엇을 달라 했다가 돈을 주면 돌려 주었고, 남에게 길흉을 예언해 주면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916년 3월에 명주 악림사(嶽林寺) 동쪽 행랑 밑의 반석 위에 단정히 앉아서 게송을 읊었다.
미륵진미륵(彌勒眞彌勒) 분신천백억(分身千百億) 시시시시인(時時示時人) 시인자불식(時人自不識)

미륵 부처님, 참 미륵 부처님이 분신(分身)해서 천백억 부처님이 되었다.
때때로 당시 사람들에게 보이되, 당시 사람들이 스스로 아지를 못하는구나.

게송을 마치고 편안히 앉아서 떠났는데, 그 뒤에 다른 고을 사람들은 여전히 대사가 포대를 메고 다니는 것을 보았다. 이에 사람들은 포대화상을 미륵 보살의 화현(化現)이라 하여, 그 모양을 그려서 존경하여 받드는 사람이 많았다 한다.

부대사(傅大士 497~569)

[참고] 『전등록(傳燈錄)』 제27권 '선혜대사(善慧大士)'

남조(南朝) 양(梁)나라 스님. 동양(東陽 : 浙江省) 오상(烏傷 : 義烏) 출신. 이름은 흡(翕). 자는 현풍(玄風). 호는 선혜(善慧). 선혜대사 · 쌍림대사(雙林大士) · 어행대사(魚行大士) · 동양대사(東陽大士) · 오상거사(烏傷居士) 등 많은 호를 가지고 있다.

16세에 유묘광(劉妙光)과 결혼하여 보건(普建) · 보성(普成), 두 아들을 낳았다. 24세에 기수(沂水)에서 물고기를 잡다가 인도의 숭두타(嵩頭陀 : 達摩)를 만나 마침내 어구(魚具)를 버리고 오상현(烏傷縣) 송산(松山)의 쌍도수(雙檮樹) 밑에서 암자를 짓고 스스로 '쌍림수하당래해탈선혜대사(雙林樹下當來解脫善慧大士 : 쌍림수 밑에서 장차 해탈할 선혜대사)'라는 호를 붙이고 자신이 도솔천(兜率天)의 미륵궁전으로부터 와서 설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암자로 돌아와 좌선을 하며 7년을 고행한 끝에 스스로 수능엄정(首楞嚴定)을 얻었다고 말했다. 유가와 도가의 전적에도 능통하여 점차로 배우고자 몰려드는 사람이 늘어났고, 그들 모두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정진하였다.

534년(양 대통6) 제자 부담(傅暀)을 시켜서 양무제(梁武帝)에게 상중하(上中下) 3선(善)의 정책에 관한 내용의 서신을 올렸다. 그해 윤 12월에 무제의 초청으로 궁궐에 들어가 중운전(重雲殿)에서 경전을 강의하였다.
539년(대동5) 종산(鍾山)으로 가서 3월 16일 수광전(壽光殿)에서 무제와 더불어 진제(眞諦)에 관하여 문답을 주고받은 다음 게송을 바쳤다. 540년(대동6) 송산의 쌍도수 사이에 불전(佛殿) · 구층전탑(九重塼塔)을 짓고 그곳에서 경 · 율 천여 권을 서사(書寫)했으니 이것이 곧 쌍림사(雙林寺)이다.
544년(대동10) 집과 전답을 희사하여 대시회(大施會)를 베풀었다. 548년(태청2) 자신의 몸을 불살라 삼보를 공양하고자 했으나 제자들이 간곡히 만류하면서 19명의 제자가 대신 분신하겠다고 하자 그만두었다. 그 뒤 오래지 않아 전쟁에서 패하여 양나라는 멸망했다.

대장경 독송을 편리하게 할 목적으로 윤장대(輪藏臺)를 건립함으로써 대중들이 그것을 돌려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후세에 만들어진 윤장대에는 모두 부자(父子) 3인의 형상을 안치했음.
569년(진나라 태건1) 4월 24일에 대중을 불러 놓고 "이 몸은 극히 더러운 것이니 뭇 고통이 모인 바이니, 모름지기 3업을 삼가고 6바라밀을 부지런히 닦아라. 만일 지옥에 떨어지면 끝내 벗어날 수 없으니 항상 참회하라" "나는 넷째 하늘(도솔천)에서 왔는데, 그대들을 제도하기 위해서 석가의 다음 보처(補處)가 되었다" 등의 말을 마치고, 결가부좌한 채 세수 73세로 입적하였다. 제자들이 쌍림산 정상에 묻고 미륵하생(彌勒下生)이라는 호를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