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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석미모(不惜眉毛 아닐 불/아낄 석/눈썹 미/터럭 모)

  • ① ‘눈썹을 아끼지 않는다’는 말. 불법(佛法)을 잘못 이해하여 진리로부터 동떨어진 설법을 하면 미모(眉毛, 눈썹)가 빠진다는 말이 전해온다. 그런데 ‘한 물건(一物)’이라 표현하는 진리의 본체는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다고 하였으니, '눈썹을 아끼지 아니하고 설법을 한다'는 것은 선지식의 중생을 위한 간절한 자비심을 나타내는 뜻이다.
  • ② 말을 아끼지 않는다. 혹은 부끄러움을 무릅쓴다는 말로 결정적인 말을 할 때 겸손하게 이르는 상용구이다.

[참고 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 刊) p11~12. (가로판 p12~14)

有一物於此호대 從本以來로 昭昭靈靈하야 不曾生不曾滅이며 名不得狀不得이로다.

여기에 한 물건이 있는데,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하여, 일찌기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았으며,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음이로다.

(註解) 一物者는 何物고 〇 古人이 頌云, 古佛未生前에 凝然一相圓이라 釋迦도 猶未會어니 迦葉이 豈能傳가 하니 此一物之所以不曾生不曾滅이라 名不得狀不得也라

한 물건이란 무엇인가? 〇 옛 사람이 송하기를 「옛 부처 나기 전에 한 상이 두렷이 밝았도다. 석가도 몰랐거니 가섭이 전할손가」하니 이것이 한 물건의 나는 것도 아니요, 죽는 것도 아니며, 이름 붙일 수도 없고 모양을 그릴 수도 없는 까닭이다.

六祖가 告衆云하사대 吾有一物하니 無名無字라 諸人은 還識否아 하시니 神會禪師가 卽出曰 諸佛之本源이요 神會之佛性이니다 하니 此所以爲六祖之孽子也라

육조스님이 대중에게 이르시되 「나에게 한 물건이 있는데 이름도 없고 자(字)도 없다. 너희들은 알겠는가?」하시니 신회선사가 곧 나와 말하기를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요, 신회의 불성입니다」하니, 이것이 육조의 서자가 된 까닭이다.

懷讓禪師가 自嵩山來어늘 六祖問曰, 什麼物이 伊麼來오 師가 罔措라가 至八年에사 方自肯曰,說似一物이라도 卽不中이니다 하니 此所以爲六祖之嫡子也라

회양선사가 숭산에서 와 뵈니 육조스님이 물으시되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하시니 회양은 어쩔줄을 모르다가 팔 년 만에야 깨치고 나서 말하기를 「설사 한 물건이라 하여도 맞지 않습니다」하였으니 이것이 육조의 적자가 된 소이이다.

三敎聖人이 從此句出이니라 誰是擧者오 惜取眉毛어다

삼교의 성인이 모두 이 글귀를 쫓아 나왔느니라. 뉘라서 말할 텐가, 눈썹을 아낄지어다!

[참고 ②]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247. (가로판 p253) '권말(卷末)에'

<권말(卷末)에>
인간의 두뇌와 손으로 이룩된 물질문명에 의해서 인간 자신들은 물론 온 자연계가 병들어 가고 있고 자칫하면 파멸해 버릴지도 모를 위기에 놓여있다. 이런 시점에서 나와 인류와 자연을 구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자아를 자각함으로써 인간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이러한 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 나갈 때 온 세계는 한 집안이 되고 법계는 적광토가 될 것이다.

선가귀감은 서산대사의 저술로 팔만장경의 골수요 삼세제불과 역대조사의 안목이다. 종파와 종교를 초월해서 참사람 되는 길이 여기에 있다.
금번에 조선조 목판본 8~9종을 참조하여 원문(原文)과 현토(懸吐)를 바로잡았고 번역은 선학원판(1948년)을 본(本)으로 했으되, 지나친 의역(意譯)과 현대어투는 고전답게 교정하였다.

국내외적으로 참선에 대한 관심도가 나날이 높아가고 있는 이때에 참선수행의 올바른 지침서가 간절히 요청되고 있으므로 분(分)을 생각지 않고 감히 선가귀감을 간행하게 되었다。이책이 자아를 깨닫는데 도움이 된다면 눈썹을 아끼지 않은 보람이라 생각하는 바이다. 불기 2532년 중복에 송담(松潭).

방할(棒喝)

  • 선가(禪家)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직접 체험의 경지를 나타날 때, 또는 수행자를 점검하며 꾸짖거나 호통칠 때, 방망이나 주장자(柱杖子)를 세우거나 그것으로 수행자를 몽둥이질하는 것을 방(棒)이라 하고, 그러한 때 크게 소리를 내지르는 것을 할(喝)이라 한다.
  • 덕산선감(德山宣鑑)은 방으로 가풍(家風)을 삼았으며, 임제의현(臨濟義玄)은 할로써 지도방법을 삼았다. 이것을 두고 ‘덕산방(德山棒)’, ‘임제할(臨濟喝)’이라 한다.

언하대오(言下大悟)

  • 말 아래에 크게 깨닫는다. 말(법문) 듣다 깨닫는다. '직하흔번(直下掀飜 바로 뒤집다)'도 같은 뜻의 말이다.

언하(言下)

  • [주로 ‘언하에’의 꼴로 쓰여]말이 떨어진 바로 그때. 또는 말을 하는 그 즉시.

[참고] 송담스님(No.157)—전강조실스님 7주기 추모재(81.12.02.음)

전강 조실 스님께서 평상(平常)에 법문하시기를 “언하(言下)에 대오(大悟)라, 말 아래 크게 깨달으라” 하셨습니다.
말은, 꼭 ‘선지식이다’라고 널리 알려진 그분의 말씀만이 말씀이 아니고 바람소리, 차 소리, 새 우는 소리, 물 흐르는 소리, 우리 귀를 통해서 들을 수 있는 모든 소리가 불보살의 법문이요 선지식의 법문인 것입니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색상도 불보살의 모습이요, 법문이요, 진리의 표현인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들이 어떻게 얼마만큼 간절히 그리고 철저하게 분심(憤心)과 신심(信心)을 내느냐 거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백지(白地)

  • 아무 턱(마땅히 그리하여야 할 까닭이나 이치)도 없이.

넨장

  • 못마땅한 일이 있을 때 욕으로 하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