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0년 전라북도 완주에서 출생하였다. 19세에 전주 태조암(太祖庵)으로 출가하여 21세에 백양사의 환응에게 4교(四敎)를 배우고, 선암사의 경운(敬雲)에게 대교(大敎)를 배운 뒤, 구암사에서 처명(處明)의 법을 이어받았다.
1896년 구암사에서 개강한 뒤 해인사 · 법주사 · 화엄사 · 범어사 등지에서 불경을 강의하였다. 1911년 해인사 주지 이회광이 일본 조동종(曹洞宗)과 우리나라 불교와의 연합을 꾀했을 때 한용운 · 성월(惺月) · 진응(震應) · 금봉(錦峯) 등과 함께 임제종(臨濟宗)의 정통론을 내세워 이를 저지하였다.
1914년 고등불교강숙(高等佛敎講塾), 1916년에는 불교중앙학림(佛敎中央學林)의 강사가 되었다. 1926년 서울 안암동 개운사(開運寺)에 강원을 개설하여 불교계의 영재들을 배출하였다. 1929년 조선불교 교정(敎正)에 취임하여 불교계를 지도하였고, 1931년 불교전문학교(동국대학교의 전신) 교장으로 선임되었다.
1945년의 광복 이후 조선불교중앙총무원회의 제1대 교정으로 선출되어 불교계를 이끌다가 정읍 내장사에서 입적하였다. 저서로는 『석전시초(石顚詩鈔)』 『석림수필(石林隨筆)』 『석림초(石林抄)』 등이 있다.
최남선(崔南善 1890~1957)
문화 운동가, 작가, 사학자. 자는 공륙(公六)이며 호는 육당(六堂)이다.
신문학 운동의 선구자로 잡지 「소년」을 창간하여 논설문과 새로운 형식의 자유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하였다.
1919년 3.1 운동 때는 독립선언문을 기초하고 민족 대표의 한 사람으로 체포되어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으나 다음해 가석방됐다. 그 후에 일제의 침략 전쟁을 미화 · 선전하는 등 친일 활동을 하였으며 이를 이유로 1949년 수감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