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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염송(禪門拈頌)』

  •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 고려 보조국사 지눌(知訥)의 제자 진각국사 혜심(慧諶) 스님이 1226년 수선사(修禪社, 지금의 송광사松廣寺)에서 화두 1125칙(則)과 각각의 칙(則)에 대한 짤막한 해설과 게송 등을 모아 엮은 30권의 책이다. 『염송(拈頌)』이라고도 한다.

『속전등록(續傳燈錄)』

  • 명(明)의 원극거정(圓極居頂, 미상~1404) 엮음. 36권 및 목록 3권. 1635년(숭정8)~1636년(숭정9) 간행.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의 뒤를 이어서 6조 혜능(慧能) 문하 제10세 수산성념(首山省念)의 제자 분양선소(汾陽善昭)부터 제20세 영은숭악(靈隱崇嶽)의 제자에 이르는 법계를 수록하였다.
  • 모두 1,203인에 대하여 기어(機語)를 중심으로 수록하였고 사적(事蹟)은 상대적으로 비중을 줄였다. 법명만 수록된 이들까지 포함하면 모두 3,110인에 대한 기록이다.
  • 편집 · 수정되는 과정에서 『오등회원(五燈會元)』 · 『불조혜명(佛祖慧命)』 · 『선림승보전(禪林僧寶傳)』 · 『선문종파도(禪門宗派圖)』를 비롯하여 여러 조사들의 어록 등에서 자료를 채록하였다.

문강(問講)

  • 조선 중기 이후 불교전문강원에서 행해진 간경(看經) 제도와 관련된 용어. 학인(學人)들이 논강(論講)에서 해결하지 못한 부분을 강주 스님 앞에 가서 묻는 것을 문강이라 하는데, 추첨을 통해 이러한 역할을 행할 사람으로 뽑힌 자를 또한 문강이라고 한다.

노로조계전제수(老盧曹溪傳諸受)
우도본래무일물(又道本來無一物)
고금다소천하인(古今多少天下人)
불석미모행방할(不惜眉毛行棒喝)

  • 『태고화상어록(太古和尙語錄)』 '백운암가(白雲巖歌)'(32구) 중에서. [원문] 傳至曹溪盧老手 又道本來無一物 可笑古今天下人 不惜眉毛行棒喝

본분(本分 근원·마음·본성 본/신분·뜻 분)

  • 자신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 부처라 중생이라 하는 것은 꿈 속에서 하는 말이다. 본래 어둡고 밝고 알고 모를 것이 없으며, 온갖 속박과 고통을 새로 끊을 것이 없고, 대자유(大自由)• 대해탈(大解脫)을 비로소 얻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본래부터 그대로 부처인 것이다. 그러므로 ‘근본 깨달음(本覺)’이라기도 하는데, 『선가귀감』 첫구절에서 말한 ‘ 〇 일원상(一圓相)’은 이것을 나타냄이다.

육조(六祖 638~713)

  • 중국의 선종(禪宗)은 달마(達摩)대사를 초조로 삼고, 그로부터 육대 되는 혜능(慧能)을 육조라고 한다.
  • 그는 속성이 노(盧)씨고, 지금의 광동성(廣東省) 조경부(肇慶府) 신흥(新興)에서 났다. 세 살에 아버지가 죽고 집이 가난하여 공부 하지 못하고, 날마다 나무를 팔아서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 스물네 살 때에 장터에서 어떤 사람이 『금강경』 읽는 것을 듣고 깨친 바 있어 그 사람의 지시로 양자강을 건너 황주부(黃州府) 황매산(黃梅山)에 가서 오조 홍인대사(弘忍大師)를 뵙고, 그의 시키는 대로 여덟 달 동안이나 방아를 찧고 있었다.
  • 오조가 법을 전하려고 제자들의 공부를 시험하는데, 교수사(敎授師)로 있는 신수(神秀)는 글 짓기를 「몸은 보리의 나무, 마음은 밝은 거울, 부지런히 닦아서, 티끌 묻지 않도록(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勤拂拭 勿使惹塵埃)」이라 하였다.
  • 이때 노행자(盧行者)는 「보리 나무 없는 것, 마음 거울 비인 것, 아무것도 없는데, 티끌 어디 묻으랴(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라고 지었다. 오조는 그를 인가(印可)하고 석가여래의 법통을 표시하는 의발(衣鉢)을 전해 주었다.
  • 그는 남방으로 돌아가서 십팔 년 동안이나 숨어 지내다가 비로소 중이 되어, 소양(韶陽)의 조계산(曹溪山)에서 선법(禪法)을 크게 일으키니 견성(見性)하여 그 법을 이은 제자만 사십여 명이 있었다. 당나라 현종(玄宗) 개원(開元)1년에 칠십육 세로써 입적하였다. 저술로는 육조단경(六祖壇經)이 있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 ‘본래 한 물건도 없다’

[참고] 『육조단경(六祖壇經)』에 나오는 혜능선사의 게(偈)의 한 구절로 범부와 성인, 깨달음과 미혹, 생사와 열반 등 모든 대립된 차별상이 없는 본래의 모습을 가리킨다.

중국 선종의 5조 홍인(弘忍) 대사가 법을 부촉(咐囑)할 때가 된 것을 알고 대중에게 각자 게송을 지으라고 하자, 대중의 상좌(上座)인 신수(神秀)가 게송을 지어 복도 벽에다 써 놓았다.

몸은 보리수(菩提樹)요 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다(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티끌 끼지 않도록 하라(時時勤拂拭 勿使惹塵埃)

혜능(慧能)은 동자(童子)가 이 신수의 게송을 외는 소리를 듣고 이 게송은 아직 본성을 보지 못한 것임을 알고, 동자를 데리고 게송 있는 곳으로 가서 별가 스님에게 부탁하여 다음과 같은 게송 하나를 쓰게 부탁했다.

보리에 본래 나무 없고 명경(明鏡) 또한 대(臺)가 아니네.(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본래 한 물건도 없거늘 어느 곳에 티끌이 있으랴.(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

오조(五祖 602~675)

  • 이름은 홍인(弘忍)이고, 성은 주(周)씨인데, 호북성 기주(蘄州) 황매현(黃梅縣)에서 났다.
  • 중국 선종의 제 4조(四祖) 도신(道信)의 법을 받아 황매현 쌍봉산(雙峰山)에서 오래 교화하였다.
  • 많은 제자들 가운데 혜능(慧能)과 신수(神秀)의 두 분이 있었으므로, 6조 혜능 계통은 남돈(南頓)의 남종선이 되었고, 신수 계통은 북점(北漸)의 북종선이 되어 두 종파가 생기게 되었다.
  • 671년에 법을 혜능에게 전하고, 당나라 고종(高宗) 상원(上元) 2년에 74살로써 입적하였다. 시호(諡號)를 대만선사(大滿禪師)라 하고, 황매산 동산에 탑을 세웠다.
  •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와 성립된 선종(禪宗)은 2조 혜가(慧可), 3조 승찬(僧粲)을 거쳐 4조 도신(道信) 스님으로 이어진다. 도신의 제자 법융(法融) 스님이 우두산에서 선법을 선양하여 우두종(牛頭宗)이 생겼다. 그리고 5조 홍인 대사의 문하에서 남종과 북종으로 갈라져 남종선, 북종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