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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굴부자고(不自屈不自高)

  • '스스로 굽히지도 말고 높이지도 말라'

[참고 ❶] 송담스님(No.531)—1994년 5월 첫째일요법회.

수행자의 마음가짐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목에다 힘을 주고 아만(我慢)을 부리고 남을 업신여기고 그런 법도 없고, 자기가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 비굴하게 굴(屈)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은 형편 따라서 살아가는 거여.

[참고 ❷]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 刊) p78~82. (가로판 p82~86)

願諸道者는 深信自心하야 不自屈不自高니라

바라건대 공부하는 이들은 깊이 자기의 마음을 믿어, 스스로 굽히지도 말고 높이지도 말아야 하느니라.

(註解) 此心이 平等하야 本無凡聖이라 然이나 約人하야 有迷悟凡聖也라 因師激發하야 忽悟眞我가 與佛無殊者는 頓也니 此는 所以不自屈이라 如云, 本來無一物也라 因悟斷習하야 轉凡成聖者는 漸也라 此는 所以不自高라 如云, 時時勤拂拭也라

이 마음이 평등하여 본래 범부와 성인이 따로 없다. 이치는 그러하나 사람에게는 어두운 이와 깨친 이가 있고, 범부와 성인이 있다.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 문득 참나[眞我]가 부처와 조금도 다름이 없음을 깨치는 것은 이른바 단박 깨친다[頓]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굽히지 말 것[不自屈]'이니, 저 「본래 한 물건도 없다[本來無一物]」고 한 것이 그것이다.
깨친 뒤에 익힌 버릇을 끊어 가면서, 범부를 고쳐서[轉] 성인이 되는 것은 이른바 점점 닦아 간다[漸]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높이지 말 것[不自高]'이니, 저 「부지런히 털고 닦으라[時時勤拂拭]」고 한 것이 그것이다.

屈者는 敎學者病也요 高者는 禪學者病也라 敎學者는 不信禪門에 有悟入之秘訣하고 深滯權敎하야 別執眞妄하야 不修觀行하고 數他珍寶故로 自生退屈也라

굽히는 것은 교(敎)를 배우는 이의 병통이요, 높이는 것은 참선(參禪)하는 이의 병통이다. 교(敎)를 배우는 이는 참선 문 안에 깨쳐 들어가는 비밀한 법이 있는 것을 믿지 않고 방편[權]으로 가르치는 데 깊이 걸려, 참과 거짓을 따로 국집하여 가지고 관행(觀行)을 닦지 않고, 남의 보배만 세게 되므로 스스로 퇴굴심을 내는 것이다.

禪學者는 不信敎門에 有修斷之正路하고 染習이 雖起나 不生慚愧하고 果級이 雖初나 多有法慢故로 發言이 過高也라
是故로 得意修心者는 不自屈不自高也니라

참선하는 이는 교문(敎門)에 닦고 끊어 가는 좋은 길이 있는 것을 믿지 않고, 물든 마음과 익힌 버릇이 일어날지라도 부끄러운 줄 모르며, 공부의 정도가 유치하면서도 법(法)에 대한 거만한 생각이 많기 때문에 그 말하는 것이 너무 교만한 것이다. 그러므로 옳게 알아 마음을 닦는 이는 굽히지도 않고 높이지도 않느니라[不自屈不自高].

評曰 不自屈不自高者는 略擧初心의 因該果海則雖信之一位也나 廣擧菩薩의 果徹因源則五十五位也니라

평해 가로되, 스스로 굽히지도 말고 높이지도 말라는 것은, 첫 마음 낼 때에 벌써 씨 안에 열매가 다 갖추어 있다는 점에서 본다면 부처의 자리 한 자리뿐인 것을 믿어야 하겠지만, 차별문에 나아가서 보살의 열매가 씨의 근원에 사무친 것을 널리 들어 말하자면 55위가 분명히 있느니라。

권교(權敎)

  • 부처님의 깊은 이치는 보통 사람으로서는 대번에 알기 어렵기 때문에, 일시적인 방편으로 처음에는 옅은 이치의 차별법(差別法)을 가르치다가, 나중에는 참된 실상(實相)의 불이법(不二法 • 眞如 • 平等)을 말씀하게 된다。그리하여 권교와 실교(實敎)의 다름이 있는 것이다。권교를 방편설(方便說)이라고도 한다。

관행(觀行)

  • 마음으로 진리를 관(觀)하여 몸소 실행함. 관(觀)은 마음눈으로 관찰하여 본다는 뜻이니, 이치를 생각하고 안으로 비추어 보는 것이요, 행은 실지로 밟아 행하는 것이므로, 교학(敎學)을 공부하는 이는 눈과 입으로만 경전을 읽지 말고, 마음으로 돌이켜 비추어 보는[廻光返照]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해과해 과철인원(因該果海 果徹因源)

  • 청량국사(淸凉國師 719 – 838)의 『화엄경소』에 있는 말로써, 널리 무르녹고 서로 통하여 걸림 없는[圓融無碍] 이치대로 본다면, 처음 발심할 때에 벌써 정각을 이룬[初發心時便正覺] 것이다.
  • 그러므로 씨를 심기도 전에 바다와 같은 부처의 넓고 큰 공덕 열매[佛功德果海]가 그 씨[因] 속에 다 갖추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부처의 자리[佛位] 하나밖에 말할 것이 없지마는, 차별문에 나아가 볼 때에는 보살들이 무량겁(無量劫) 동안에 난행고행(難行苦行)으로 오십오위(五十五位)의 과정을 낱낱이 밟아 올라가서 비로소 시각(始覺)의 성불을 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보살(菩薩)

  •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각유정(覺有情) • 개사(開士) • 대사(大士)등으로 번역.
  • ① 성불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
  • ② 대승교에 귀의, 사홍서원을 발하여 육바라밀을 수행하며 위로는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일체 중생을 교화하여 자리 • 이타(自利 • 利他)의 행을 닦으며 51위의 수행계단을 지나 드디어 불과(佛果)를 증득하는 이。

오십오위(五十五位)

  • 경전마다 조금씩 달리 말하였는데, 『능엄경(楞嚴經)』에 있는 대로 하면, 처음 간혜지(乾慧地)를 지나서 열 가지 믿음 자리[十信], 열 가지 머무는 자리[十住], 열 가지 나아가는 자리[十行], 열 가지 돌이키는 자리[十廻向], 네 가지 더 힘쓰는 자리[四加行], 열 가지 땅[十地]을 낱낱이 다 지나 올라가야 성불하게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백지장(白紙張 흰 백/종이 지/낱·얇고 넓적한 조각 장)

  • ① 흰 종이의 낱장.
  • ② ’핏기가 없이 창백(蒼白)한 얼굴빛’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때꼽재기

  • 때가 여러 겹으로 엉겨붙은 조각이나 부스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