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趙州)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말하였다. "뜰 앞의 잣나무이니라"
스님이 말하였다. "화상께서는 경계를 사람들에게 보이지 마십시오"
선사가 말하였다. "나는 경계를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노라"
스님이 다시 말하였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말하였다. "뜰 앞의 잣나무이니라"
평상화(平常話)
① 평범한 말. 평상시의 말.
② 평상시(平常時 특별한 일이 없는 보통 때) 이야기[話]. 일상생활 이야기. 일상생활.
[참고 ❶] 송담스님(No.058)—1977년 동지차례(77년 12월 22일)(정사년 11.12 음)
참선(參禪)은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평상화(平常話), 일상 생활—밥 먹고, 옷 입고, 똥 누고, 일하고, 소지하고, 걸어 다니고—하는 그 생활을 한 걸음도 옮기지 아니하고 참선을 해야만 하는 것이고.
깨달음도 역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고, 손으로 일을 하고, 발로 걸어 다니고, 생각으로 성내고 웃고 울고 하는 그 일상, 평상시의 생활을 조금도 여의지 아니하고 있는 것입니다. 깨달음도 그렇고 또한 참선도 그렇습니다.
중생의 번뇌 망상, 일체 행동 동작을 떠나서 깨달음이 있다면은 그것을 떠나서 찾아야 되겠지마는, 중생의 눈과 귀와 코와 입과 몸뚱이와 생각, 그놈을 일찰나(一刹那)도 떠나지 아니하고 깨달음은 있는 것입니다. 깨달음이 있다고 하는 것은 부처님이 거기에 계시는 것입니다.(10분2초~11분29초)
행주좌와일체처(行住坐臥一切處), 걸어다니고 머물르고 또 앉고 눕고 하는 것 그러한 모든 곳에서,착의긱반일체시(着衣喫飯一切時)라. 옷 입고 밥 먹고 하는 모든 때라. (요 소리가 더 크게 안되나? 정전 되았어? 응.)군금욕심평상도(君今欲識平常道)인댄, 그대가 지금 평상도리(平常道理)를 알고자할진댄,북두남성위불별(北斗南星位不別)이니라. 북두칠성(北斗七星)과 남두(南斗)의 성(星)이 그 위치가 다르지 않느니라.
이 게송은 평상화(平常話) 도리(道理), 평상 도리.
진리(眞理)라고 하면은 저 깊고 깊어서 알라야 알 수 없고, 높고 높아서 볼라야 볼 수 없는 그러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렇게 인식을 합니다.
그러나 그 진리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걸어가다가 서고, 멈추었다가 걸어가고, 또 앉고 눕고, 그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하는 우리 일상생활하는 모든 곳과 밥 먹고 옷 입고 또 똥 누고 오줌 누고 일하고 하는 모든 때가 하나도 진리의 나타남이 아닌 것이 없다.
행주좌와(行住坐臥)와 착의긱반(着衣喫飯)하는 그러한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를 여의고 진리를 찾아서는 무량겁(無量劫)을 두고 찾아도 진리는 나타나지 않은 것입니다.(처음~5분6초)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②]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누진(漏盡)
번뇌[漏]가 다하다[盡]. 누진이란 모든 번뇌가 영구히 다한 것이다. 무루(無漏) · 진루(盡漏)라고도 한다.
누(漏 : (산스크리트어) āsrava.)는 번뇌(煩惱 : (산스크리트어) kleśa.)의 동의어로 누주(漏注) · 누설(漏泄) · 누실(漏失) 등으로도 한역한다. 일반적으로 번뇌로 말미암아 중생의 6근으로부터 항상 과실(過失 결점. 과오. 허물)이 흘러 나온다는 뜻에서 번뇌를 누(漏)라고 한다.
[참고] 『대지도론(大智度論)』 ‘大智度共摩訶比丘僧釋論第六’
三界中 三種漏 已盡無餘 故言漏盡也
삼계 안에서 세 가지 번뇌[三種漏]가 이미 다 없어져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으므로 누진이라 한다.
삼종루(三種漏)
삼계(三界, 욕계 · 색계 · 무색계)의 번뇌를 세 가지로 나눈 것. 욕루(欲漏 : 無明을 제외한 欲界의 모든 번뇌) · 유루(有漏 : 無明을 제외한 色界와 無色界의 일체 번뇌) · 무명루(無明漏 : 三界의 無明) 등 세 가지 유루법을 말한다.
수기(授記)
부처님이 불법에 귀의한 중생에게 어느 시기, 어느 국토에서 어떤 이름의 부처로 태어날 것이며, 그 수명은 얼마나 될 것이라는 것 등을 낱낱이 제시하면서, 미래세의 언젠가는 반드시 부처가 될 것이라고 알려 주는 것을 말한다. 또는 부처님이 중생에게 기별(記別)을 주는 것을 말한다.
마정수기(摩頂授記 문지를·쓰다듬을 마/정수리·이마 정/줄 수/기록함·기억함 기)
마정기(摩頂記), 마정수기별(摩頂授記莂)이라고도 한다. 손으로 정수리(이마)를 만져주면서 기별을 주는 것.
어떤 사람이 수행을 철저히 하거나, 염불 또는 기도를 정성스럽게 봉행하거나, 남들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인간 세상에 모범이 될 만한 훌륭한 일을 하였을 때, 불보살(佛菩薩) 또는 천지신명이 그의 앞에 나타나 그의 정수리(이마)를 만져 주면서 ‘훌륭한 일을 하였다. 그대는 이 공덕으로 성불을 성취하리니, 그때 얻은 결과는 이러이러 하리라’고 예언해 주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