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성일편(打成一片 칠 타/이룰 성/한 일/조각 편)
- ① '쳐서[打] 한 조각(一片, 덩어리)을 이룬다[成]'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 ② 차별대립을 여읜 경지. 이분법적이고 상대적인 것이 융화 · 용해되어 하나가 되는 것.
화두(話頭)
-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주삼야삼(晝三夜三)
- 밤낮. 밤이나 낮이나.
찌꺼리
- ‘찌꺼기’의 사투리.
불구문자(不拘文字)
- 문자(文字)에 걸리지[拘] 아니한다[不].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몽산화상 저 | 혜각존자 편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30~131 역주. (가로판 p126~127) 『전등록』 제9권, 『오등회원(五燈會元)』 제4권, 복주고령신찬선사(福州古靈神贊禪師).
고령 신찬선사(古靈神贊禪師)가 행각을 하던 중 백장(百丈) 선사를 만나서 깨달은 후에 본사로 돌아왔다. 은사 스님이 목욕하며 때를 밀게 하니, 신찬 선사가 등을 만지며 이르되 「좋은 불당(佛堂)에 부처가 성스럽지 못하다」 하거늘 스승이 돌아보니, 신찬 선사가 이르되 「부처 비록 성스럽지 못하나 능히 방광(放光)은 할 줄 아는구나」 하였다.
또 은사 스님이 경을 볼 때에 벌이 창에 와 나가려 하거늘, 신찬 선사가 보고 송(頌)을 읊되, 空門不肯出 投窓也大痴 百年鑚故紙 何日出頭期
'빈 문으로 나가지 아니하고 창문에 부딪히니 어리석구나. 백 년을 옛 종이(故紙 경전)를 비벼댄들 어느 날에 나갈 기약이 있으리오?'
은사 스님이 경을 놓고 묻되 「네 행각하야 어떤 사람을 만났느냐?」 신찬 선사가 이르되 「백장화상(百丈和尙)의 가르치심을 받아 이제 스님의 은덕을 갚고저 하옵니다」스승이 재계(齋戒)하고 신찬 선사를 청하야 설법하라 하거늘, 신찬 선사가 법좌(法座)에 올라 이르되, 靈光獨耀 逈脫根塵 體露眞常 不拘文字 眞性無染 本自圓成 但離妄緣 卽如如佛
'영광(靈光)이 홀로 비취어 근진(根塵)을 멀리 벗어나며 체(體)는 진상(眞常)이 드러나 문자에 걸리지 아니하고, 진성(眞性)은 물듦이 없어 본래 스스로 원성(圓成)하니 다만 망연(妄緣)을 여의면 곧 여여불(如如佛)이라' 하니, 스승이 그 말에 깨달았다.
사교입선(捨敎入禪)
- '교(敎)를 버리고[捨] 선(禪)에 들어간다[入]' '일정한 교학(敎學)을 마치고 선종(禪宗)에 입문하는 것'
- 선가(禪家)의 수행관(修行觀)의 하나로,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문(法門)인 교(敎)는 올바르게 공부하고 이해하면 참선을 철저히 할 마음이 날 수밖에는 없고, 진리는 실(實)답게 닦고, 참답게 깨달아서 체달(體達)하는 것이지 이론적으로 따져서 알아 들어갈 수 없는 것이고 이론적으로 가르쳐서 알게 할 수도 없는 것이어서, 교(敎)에서 닦은 뒤에는 그것을 몽땅 내버리고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법인 선(禪)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사교입선(捨敎入禪)의 수행관이다.
- 수행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 설하신 부처님 법문인 교(敎)는 올바르게 이해하고 올바르게 공부하면 참선을 철저히 할 마음이 날 수밖에는 없는 것이고, 참선을 올바르게 하면 교(敎)가 하나도 버릴 말씀이 없습니다. 교(敎)와 선(禪)은 둘이라 할 수가 없고, 전부가 다 소중하고도 훌륭한 법문(法門)입니다.